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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강감찬과 최항, 경운기 vs. 페라리

by taeshik.kim 2024.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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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은 최항보다는 24살이나 연장이었지만, 출세가 훨씬 늦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종합하면 강감찬은 성종 2년(983) 12월 연말에 실시된 특별전형에 합격해 등단한다. 절요 이 시점 기록을 보면 왕이 진사進士를 뽑으라는 명령이 있음에 따라 실시된 이 시험에는 왕이 직접 임헌臨軒하여 복시覆試를 실시하고는 강은천姜殷川을 비롯한 세 명과 명경明經 1명을 급제케 했다고 하면서 복시를 치르는 일이 이때 시작했다고 한다.

강은천이 바로 강감찬姜邯贊의 본래 이름이다. 

이 일이 고려사 권73 지志 권 제27 선거選擧에는 좀 더 자세히 보이는데 정광正匡 최승로崔承老와 좌집정左執政 이몽유李夢游, 병관어사兵官御事 유언유劉彦儒, 좌승左丞 노혁盧奕이 진사進士를 뽑았는데, 왕께서 복시覆試를 보시어 갑과甲科 강은천姜殷川, 을과乙科 2명, 명경업明經業 1명에게 급제及第를 내려주었다고 했으니, 이 특별전형 책임자는 최승로임을 엿본다. 

이 복시는 보다시피 왕의 명령에 따라 실시된 비상 특별전형이었다. 보통 이럴 때는 내정자가 있기 마련인데, 강감찬을 뽑기 위한 조처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또 복시라 했으므로, 강감찬이 이전에 벼슬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고려사가 정리한 그의 열전에는 본래 이름 강은천姜殷川인 금주衿州 출신 강감찬은  아버지 강궁진姜弓珍이 고려 건국에 기여한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임에도 출사는 상당히 늦었던 듯 “성종 때 갑과甲科에 장원으로 뽑혀 여러 차례 승진하여 예부시랑禮部侍郞이 되었다”고 했다. 

문제는 이 등과 때 나이. 948년 생인 그가 저 시험 당시(983년) 이미 서른여섯살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로서는 중늙은이 소리를 듣던 늦은 나이였다. 등과 직후 그는 곧바로 서른일곱살이 되었다. 

이는 그보다 불과 여섯살이 많은 942년생인 서희가 18세에 갑과甲科에 급제하고, 최언위 손자인 최항이 20세에 장원한 것과는 현격히 등과가 늦은 것이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강감찬은 다 늙어서야 뒤늦게 행정고시에 붙어 사무관 타이틀을 단 것이다. 사법고시를 9수인가 했다는 윤석열 현 대한민국 대통령과 비슷한 케이스 아닌가 한다.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는 강감찬이 강직한 성품 때문에 번번이 진급에서 누락하고 외직을 전전한 것처럼 그렸지만, 과연 그럴까? 나는 그와는 전연 거리가 멀었다고 본다. 
 

젊은 친구 밑에 일하는 늙다리 부하는 기분이 어땠을까?

 
고려사 열전에서는 그를 일러 “어려서부터 공부를 좋아하고, 뛰어난 지략이 많았다”고 하고, 고려사절요 그의 졸기에서는 “성품이 청렴하여 살림을 돌보지 않았고,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기묘한 계략이 많았다”고 하거니와, 혹 청렴한 성품 운운한 대목을 보고서는 드라마가 저런 특징을 잡아내지 않았나 하지만 천만에. 

그는 아부도 잘했다. 지금의 행안부 장관쯤에 해당하는 이부상서吏部尙書가 되자마자 강감찬은 자기 땅 12결을 국가 혹은 왕실에 헌납해 군호軍戶들한테 주도록 했다.

저 12결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는 없지만 성은을 입었다고 해서, 자기 땅을 내놓은 것이다. 이 대목을 꼭 아부라 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아부 아니라고도 할 수 없다. 

이 자발 헌납이 어떤 평지풍파를 일으켰을까? 나는 본래 떼부자였을 가능성이 큰 감찬 형의 이런 선수는 다른 떼부자 고위관료들을 협박했다고 본다.

이를 보고 다른 부자 관료들이 뭐라 했겠는가?

“저 영감 왜 저래? 우리더러 뭘 어쩌라는 거야? 우리도 내놓으란 거잖아?”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 강감찬은 자기보다 무려 24살이나 어린 최항과 견주어도 한참이나 출세가 늦었다.

이 어린아이가 약관 스무살에 등단하고는 고속 페달을 밟고는 페라리 몰고서 달려가는 데 견주어 강감찬은 가뜩이나 늦게 출발한 데다 승진도 한없이 늦어져 거의 경운기나 리어카를 타고 가는 수준이었다. (애초 글에서는 강감찬 초명을 생각하지 못해 등단 시점을 특정하지 못했다. 강민경 선생 지적으로 바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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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속 승진 가도 달린 최항, 이삼십대에 이미 지공거

 

초고속 승진 가도 달린 최항, 이삼십대에 이미 지공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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