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에 뒤덮힌 숭례문. 2008. 2. 11
아래는 2014년 10월에 작성한 원고 ‘총체적 문화재 부실과 언론’과 중 끝부분이다. 이 원고는 그달인지 그 다음달인지 발간되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현 한국문화재재단) 월간 잡지에 실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수위와 논조가 잡지 혹은 문화재청과 맞지 않다 해서 게재 거부되어 사장되고 말았다.
그 직전 문화재계는 이른바 적폐청산이니 하는 소위 정풍운동이 벌어졌으니, 그 즈음 방화로 타내린 숭례문이 복구 복원되었지만, 전통기법으로 복원했다는 단청이 문제가 되어 그것이 벗겨지고, 종국에는 전통기법이 아니라 뺑끼칠을 한 것으로 드러난 일이 결국 문화재계 비리가 원전급 비리가 되어 그 전체가 비리집단이 되어 감사원 감사니 경찰수사니 시달렸다.
이 정풍운동은 희한하게도 당시 문화재청과 그의 주변인사들이 주도했다는 점에 특징이 있으니, 흡사 홍위병을 앞세운 문화대혁명 같아 그들을 제외한 모든 문화재계는 적폐였고 비리집단이었다. 이 운동은 결국 그가 청장 취임 7개월 만에 경질됨으로써 막을 내렸지만, 그 상흔은 아주 커서, 지금도 곳곳에 생채기를 남기고 있다. 이 글은 이를 염두에 두고 그 사태를 반추하자는 취지였다.
전체 원고는 망실하고 그 일부를 전재한 글이 남아있어 전재한다.
화마에 뒤덮힌 숭례문. 2008.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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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자다. 더구나 문화재를 오랫동안 담당하는 현직 기자다. 이런 나로서는 이런 비판이 한편으로는 나 자신을 겨눈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리고 그런 비판이 동료들을 향한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래서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그런 까닭에 오직 나 자신만이 사태를 바로 보거나, 정의의 편에 섰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아니, 정확히는 지금의 내가 바라보는 시각이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비판을 피하고픈 생각은 없다.
단언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너무나도 뻔한 거짓말이나 과장들이 아무런 여과 장치도 없이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었다. 이번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 국면에 접어든 지금, 그간 언론이 지적한 문제 중에서 사실로 드러난 것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다. 전통 기술로 복원했다는 숭례문 단청이 실은 페인트칠에 지나지 않았다는 한 가지만 있을 뿐이다.
지금도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문화재 현장에 다시 마타도어가 난무한다. 그 와중에 심지어 전통가마에서 구운 숭례문 기와만 해도 공장제 기와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버젓이 공신력 있는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비단 이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마타도어가 장기로는 문화재를 살리는 길에 도움이 된다면야 그런 대로 효능을 받아들이겠지만, 가뜩이나 질식 상태인 문화재의 숨통을 아주 끊어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크다.
비판은 가을 서리와 같되 그것은 언제나 따뜻한 봄날의 예고여야 한다.
화마에 뒤덮힌 숭례문. 2008.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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