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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기자? 기뤠기?

없어졌다 난리치던 지광국사탑 석사자 네마리가 떡 하니 박물관 수장고에

2016년 3월 무렵, 문화재계에서는 난데없는 지광국사 현묘탑 석사자상 네 마리 사건으로 홍역을 치렀다. 네 마리 사건이란 무엇인가? 오래전에 없어진 줄 알았던 이 네 마리가 느닷없이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튀어나온 사건을 말한다. 대체 우째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가?


이 지광국사 현묘탑이 본래는 지금의 원주 법천사지에 있던 것이 제자리를 떠나 유리걸식한 이야기는 유명하거니와, 한국전쟁에 폭격을 당해 산산조각난 것을 시멘트 땜질했거니와, 그 보관단체인 국립중앙박물관이 2005년 용산으로 거점을 옮기면서도 그 훼손을 우려해 지금의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 야외 뜰에다가 그대로 두고 갈 수밖에 없었으니, 그 처리에 골머리를 앓던 문화재청이 마침내 이때가 되어 대대적인 해체수리를 결정하기에 이르렀으니, 그것이 공식발표된 시점이 2016년 3월 9일이었고, 그것을 결행하는 날이 그달 22일이었다. 


그때 해체한 현묘탑은 곧장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있는 대전으로 옮겨져, 현재 수리가 거의 완료되어, 원주로 돌아갈 날을 이제나저네나 기다리는 중이다. 


그것이 해체보수가 결정되자, 어디에선가 그 탑 네 모서리를 장식하던 석자자 네 마리 행방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기 시작했거니와, 그 발단이 어찌 되었는지, 이미 그 무렵에 나는 연합뉴스 기자에서 해직되어 야인생활을 할 적이라, 내가 직접 간여하지 않은 사건이라, 그것을 확실히 장담할 수는 없다. 관련 기사를 검출해 보아다, 왜 그것이 그때 느닷없이 튀어나와 논쟁이 되었는지는 내가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다. 암튼 해체보수에 맞추어 누군가 언론을 통해 이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라 본다. 


그렇다면 지광국사 현묘탑 석사자 네 마리는 무엇인가? 그 발단은 다음 사진이다.  




문제의 사진이다. 이 사진 촬영시점이 정확히 언제인지 자료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선총독부시절의 편린을 담은 것이 아닌가 하거니와, 한국전쟁 피폭 이전 모습을 확실하거니와 보다시피 기단 네 모서리에는 석사자 네 마리가 각기 자리를 틀고 앉았다. 


해체수리 보수 착수에 맞추어 저 사자상은 어디로 갔는가 하는 논란이 불거졌거니와, 이 무렵만 해도 저 석사자를 직접 본 사람은 찾을 길이 없었다. 더욱 문제는 지금의 행방을 전연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어느 저명한 불교미술사학도는 이때면 언제나 전가의 보물처럼 들이대는 논리, 곧 일본놈들이 가져갔다고 당당히 주장하기도 한 것이다. 


한데 그런 논란이 일고 있음을 모를 리 없던 국립중앙박물관이 슬그머니 그런 석사자가, 것도 네 마리 모두가 모조리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다고 발표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그 사정을 증언하는 우리 공장 박상현 기자 보도다. 


2016.03.16 20:17:15

사라진 지광국사탑 사자상, 국립중앙博 수장고서 확인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지금까지 도둑맞은 것으로 알려졌던 국보 제101호 법천사지 지광국사 현묘탑 기단부의 사자상이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6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지난해 지광국사탑 해체·수리를 준비하기 위해 문헌 조사를 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자료를 통해 사자상이 보존처리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최근 국립중앙박물관 직원이 수장고에 사자상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해 발간한 '미술자료' 제87호의 '법천사지 지광국사 현묘탑에 대한 기초적 검토' 논문에 따르면 국립중앙박물관은 2013년 지광국사탑 사자상 4개에 대한 보존처리를 마쳤다.


지광국사탑 사자상은 무게가 20∼29㎏이며, 가장 큰 석상이 가로 45㎝, 세로 25.5㎝, 높이 28.5㎝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지광국사탑 사자상은 탈착이 가능한 석조물로 한국전쟁 때 탑이 폭격을 당하자 도난 위험과 안전을 고려해 수장고에서 보관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사자상의 존재를 숨기거나 몰랐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광국사탑은 균열과 시멘트 복원 부위의 탈락, 옥개석(屋蓋石, 덮개돌)과 꼭대기인 상륜부의 구조적 불안정이 확인돼 오는 22일 전면 해체에 들어간다.


문화재청은 다음 달 6일 해체한 부재를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옮겨 2019년까지 보존처리할 계획이다.


석탑을 연구하는 박경식 단국대 교수는 "지광국사탑은 붕괴 직전까지 간 탑으로 현재로선 사자상을 탑 위에 놓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면서 "보존처리 이후 석탑을 세울 장소와 마찬가지로 사자상 부착 여부도 추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psh59@yna.co.kr


얼마나 허탈한 일인가? 박물관이 졸라 터졌을 것임은 불문해도 가지하거니와, 그 담날부터 '사라졌다던 사자상 버젓이 박물관 수장고에' 라는 식의 자극적인 제목을 단 비판이 쏟아졌다. 뭐 박물관도 황당하기는 했을 것이다. 


박물관 역시 그네들이 저 석사자를 둘러싼 공방이 무엇인지 모를 리 없었다. 2016년 이전에도 그 존재조차 망각되었음을 그네들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함에도, 그렇게 사라진 것으로 간주된 석사자 네 마리가 박물관 수장고에 있다는 사실을 단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그런 논란을 알고도, 그런 논란의 물품을 그네들이 소장하고 있음을 알고도 숨긴 박물관은 비난을 피해갈 길이 전연 없다. 


이런 일이 박물관에서는 심심찮게 있거니와, 사라졌다고 밖에서는 정작 난리를 치는데, 그런 물품이 수장고에 쳐박혀 있는 일이 말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수장품 정리가 제대로 안 되어 있고, 되어 있다고 해도 외부에서 그런 자료가 있다는 사실을 즉각으로 확인할 시스템이 전연 부재한 까닭이다. 무엇이 국민과 함께하는 박물관인가? 박물관이 무슨 물건을 얼마만큼 갖고 있는지도 모르게 하는데 무슨 국민과 함께하는 문화재인가?  


다음 문제는 그렇다면 과연 저 석사자 네 마리는 출처가 어찌되는가? 정말로 저 지광국사 현묘탑과 같은 세트인가? 애초 그렇게 세트로 만들어 봉안한 것인가? 이는 전연 다른 문제다. 


이 문제는 내가 간단히 끝냈다. 이 논란이 불거질 무렵인 2016년 3월 18일 나는 다음과 같은 사진을 첨부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법천사지 지광국사 현묘탑 기단 네 모서리를 각각 장식하던 석사자 네 마리가 사라진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더라 하는 보도가 이어졌다. 망각에서 사라진 네 마리 사잔을 찾은 점은 상찬할 만하다. 이제 그것과는 별개로 과연 저 네 마리가 원래의 현묘탑과 일체품인가는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 


저런 식으로 석사자를 석탑 네 귀퉁이 혹은 네 면에다가 각각 놓는 발상이 생경하지는 않으니, 대표적인 케이스로 불국사 다보탑이 있다. 이 탑 석사자는 다 사라지고, 지금은 석가탑을 마주보는 쪽에 달랑 한 마리만 남았다. 


이런 네 마리 석사자는 살피면 거의 예외없이 석탑과 일체가 아니다. 후대에 어딘가에서 주워다가 뽑아 올려놓았을 뿐이다. 다시 말해 맥락이 전연 다른 별건 성보문화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 현묘탑 석사자도 내가 100% 확신은 못하겠지만 99%는 별건이다. 석탑 전체와 얼개를 형성하고, 그런 까닭에 단순히 얹어놓은 것이 아닌 그것과 일체화를 이룩한 구조물이어야 애초의 석탑 일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저들 개별 석사자가 의미가 없느냐 하는 뜻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다. (March 18, 2016 at 9:12 AM)


석사자로 난리를 치는 일이야 이해하겠지만, 그것을 현묘탑과 일체로 전제하고서 전개하는 그런 논쟁을 꼴만 우습게 된다. 


현장 한 번 확인으로 너무나 싱거운 이런 문제들로 시간을 낭비할 틈이 우리한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