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선언(1943. 11)은 여러모로 의문에 싸인 사건이다.
카이로 선언에서 전후 일본의 처리에 대해 연합국 미국, 영국, 중국 3개국이 밝힌 내용을 보면,
3대 동맹국은 일본의 침략을 정지시키고 이를 벌하기 위하여 이번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위 동맹국은 자국을 위하여 어떠한 이익도 요구하지 않으며, 또 영토를 확장할 의도가 없다.
위 동맹국의 목적은 일본이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개시 이후에 탈취 또는 점령한 태평양의 도서 일체를 박탈할 것과 만주, 대만 및 팽호도와 같이 일본이 청국으로부터 빼앗은 지역 일체를 중화민국에 반환함에 있다.
또한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될 것이다. 앞의 3대국은 조선민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자주 독립시킬 결의를 한다.
이를 위해 3대 동맹국은 일본과 교전 중인 여러 국가와 협조하여,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받아내는 데 필요한 중대하고도 장기적인 작전을 계속할 것이다.
전후 조선을 독립시키겠다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이는 사실 한국의 운명에 있어 엄청난 사건으로 한국의 독립은 이 선언에서 사실상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독립을 보장하겠다는 카이로 선언의 내용이 포츠담 선언에서 재차 확인되면서 종전 후 미국과 소련 군정은
때로는 신탁통치안 등으로 시끄럽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한국독립을 전제로 한 전후 처리의 길을 걸었고, 3년만에 남과 북에 각각 독립국가가 수립되었다.
이 카이로 선언에서 왜 느닷없이 한국의 독립이 특기되었는가 하는데 대해서는 여러 이설이 있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어느 것도 썩 명확하지 않다.
카이로 선언의 배후에 대해서는 아직 완전히 해명되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각설하고-.
한국이 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으로 전후 독립이 연합국 사이에서 거의 기정사실화 되었던 데 반해-.
베트남은 전후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종전의 순간까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이는 전쟁 전 베트남을 통치하던 국가가 프랑스로 전후 처리에서 연합국측 승전국으로 설 가능성이 큰데다가,
전후에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진주할 연합국 국가도 북위 18도선을 경계로 이북의 중국과 이남의 영국으로,
소련과 미국이 진주하게 되는 한반도와는 상황이 매우 달랐다는 뜻이다.
간단히 말하면-.
2차대전 종전 이후 독립이 기정사실화한 한국과 달리,
베트남은 종전 직전까지도 과연 독립할수 있을지 매우 불투명한 상태에 있었다는 말이다.
종전 후 누가 이를 어떻게 통치할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았고,
독립을 시킬 것인지도 불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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