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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의 특별하지 않은 박물관 이야기

코로나 시대와 박물관 : 3년 간 박물관들의 좌충우돌

by 느린 산책자 2023.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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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한창 때의 일이었다. 의료진도 그렇지만 공무원도 코로나 관련 업무에 대거 동원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나 같은 지자체 소속 학예직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코로나 확진자 동선 추적 업무를 도왔으나, 나중에는 코로나 확진자들이 격리된 생활치료센터 업무에 차출되기에 이르렀다. 낮밤 3교대로 돌아가는 일이 버겁기도 했지만, 일주일간 멀리 나가서 하는 일인지라 업무가 바쁜 이들에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러자 내부 게시판에는 이런 말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코로나 때문에 박물관, 미술관들은 문 닫고 있지 않나요? 거기는 일이 없을 텐데, 거기부터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 외에 익명 사이트들에서도 박물관, 미술관 혹은 도서관 사람들은 코로나 때문에 쉬고 있을 텐데 부럽다는 글이 종종 보였다. 굳이 댓글을 달지는 않았으나, 만약 내게 직접 이런 말을 했다면 이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우리도 일이 없는건 아니에요!”라고.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먼 훗날, 박물관학 교과서의 한 챕터에는 이런 챕터가 생기지 않을까. ‘코로나 시대의 박물관’ 내지는 ‘박물관의 코로나 시대’같은 것 말이다.

나는 하필이면 코로나가 처음 유행하기 시작하던 그해에 전시를 두 개나 치렀다. 하나는 로비에서 하는 작은 전시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이 질병이 이렇게나 길게 갈 줄 몰랐다. 별 생각없이 메르스처럼 곧 나아지겠지하며 휴관 조치가 풀리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두 달을 예정한 전시는 실제로는 단 2주 동안만 관람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었다. 너무 허탈했다. 대체 내가 그동안 뭘 한 걸까, 심지어는 전시에 드는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좌절은 한 번 더 있었다. 기획전 바로 전날, 코로나 2.5단계 격상으로 아예 오픈을 못하게 된 것이다. 보도자료는 이미 나갔는데 문을 닫게 되었으니 기사에 실릴 리가 만무했다. 다행히 2주 후에 열긴 했지만, 한번 나간 보도자료를 인용해주는 곳은 그다지 없었다.
 

줌 수업. 코로나의 조공품이었다.

 
이런 문제는 당시 모든 박물관이 겪던 일이었다. 코로나가 점차 길어지자 일부 박물관은 코로나로 어쩔 수 없이 휴관하는 이때를 기회(!)로 이용하기도 했다. 상설전시실을 리모델링하는 박물관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문을 닫았다고 해서 쉬는 게 쉬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힘든 일이 생긴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부분도 내게는 악재였다. 유물을 대여하려 해도, 리모델링으로 유물 대여가 어렵다고 거절하는 곳이 비일비재했다.

전시에 못 오시는 관람객들을 위해, 박물관들에서는 학예사가 하는 해설 영상도 앞 다투어 촬영했다. 이전에 아예 안 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대부분의 박물관이 이런 영상을 서비스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방송용으로 짧은 인터뷰를 할 때는 몰랐는데, 몇 번 영상을 촬영하면서 긴 호흡(그래봤자 편집하면 20~30분?) 영상을 찍는 것은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20~30분의 영상을 위해서는, 짧게는 하루 정도의 촬영 시간이 소요된다. 편집은 더더욱 오래 걸렸다.

시간도 시간인데, 나 같은 극 I성향의 학예사는 정말이지 피하고 싶은 일 중 하나였다. 코로나 시대에 제일 적응하기 힘든 것 중 하나였다. 

전시도 전시지만, 교육은 더 비상이었다. 교육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대면 수업이 안 되는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처음에는 영상을 촬영하여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때는 교육 강사들도 영상 촬영은 처음인지라 상당히 힘들었다고 들었다. 이후에는 학교처럼 줌으로 수업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생각보다 품도 많이 드는 일이었다.

학교 선생님들이 줌 수업에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은 것처럼, 박물관들도 시행착오를 상당 시간 겪었다. 줌으로 수업을 하게 되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활동에 제약이 생긴다. 복잡한 만들기 같은 것은 당연히 배제가 된다. 아이들의 집중력이 흩어지기 일쑤이니, 연극적인 요소를 적극 넣게 되었다.

아마 말하진 않아도, 강사 선생님들도 많이 힘드셨을 것이다. 교보재도 교육생 각자의 집에 보내야했다.

나는 교보재를 포장하면서 연구원 선생님들께 “우리 사진 찍어서 인스타에 올릴까요?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보내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반은 진심이고 반은 농담이기도 했다.

포장해서 우체국으로 짐을 나를 때마다 택배 회사 직원이 된 느낌이었달까. 바보 같지만, 나중에서야 우체국 예약 시스템을 알게 됐다. 뭐, 이렇게 대량 발송을 해봤어야 말이지!
 

실감콘텐츠. 이 역시 코로나를 향한 조공품이었다.



코로나 시대가 끝나가는 요즘

3여 년 간의 긴 시간 끝에, 드디어 코로나 시대가 저물 기미가 보인다. 사람들의 일상이 회복되듯, 박물관들 또한 휴관 없이 전시도 하고 대면 교육도 시작했다. 

3년간 박물관들은 기존의 업무에 더해, 코로나 시대를 위해 이것저것 새로운 시도들을 했다. 사람들은 모를 수도 있지만, 그 시도들을 위해 박물관은 바삐 돌아갔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막상 쓰려 하니 그렇게까지 대단하게 말하기는 쑥스러운데, 특히 홍보, 교육 등이 많이 달라진 듯하다. 실감 영상이라는 것도 코로나 시대에 대대적으로 유행(!)했다. 

관람객들은 그간의 박물관들의 변화를 느꼈을까. 만약 느꼈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약간은 알고 계신 것도 같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는데, 트위터에서 어느 분이 박물관들의 전시를 평가하면서 '코로나로 쉬는 동안 내공을 쌓아 기공포를 쏘는 느낌'라고 한 트윗을 보았다. 재밌는 표현이다 싶기도 하면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먼 훗날에는 코로나 시대의 박물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

나는 이때의 평가가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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