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인연이 생기는 때가 있다. 그리고 사람과의 인연도 있지만, 유물에도 인연이 있다. 그때도 그런 때였다.
회의를 다녀온 과장님이 갑자기 나를 호출했다.
“○○ 선생. 잠시 이야기 좀 하지.”
“저요?”
나를 부를 만한 이유가 없는데, 나를 부르시니 눈이 동그래졌다.
“○○ 선생이 지난 번에 갖고 왔던 그 책 있잖아. 관장님이 그걸 소개하는 전시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네.”
이런 것이 바로 내 발등에 도끼를 찍는다는 것이었다.
맞다. 그 책은 내가 스스로(!) 우리 전시관에 전시해 놓은 책이었다.
이전부터 그 책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그 책으로 전시를 하고 싶다고 생각은 했었다.
어느 유명 소설의 모티브가 된 그 책은, 직접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다.
트위터에 우리 박물관으로 검색하면 그 책이 전시되지 않아 안타까워하는 트윗이 연관되어 올라왔다.
그러나 우리 전시관 주제와는 전혀 맞지 않았기에, 골몰하다가 ‘아! 전기수 코너에 두면 되겠다!’하면서 한글 소설 몇 권과 그 책을 함께 진열장에 전시한 것이다.
하긴 전시랄 것도 없고, 진열장에 유물을 몇 개 추가한 정도였다.
문제는 그 소설이 인기 드라마로 각색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에 있었다.
진열장에 몇 권 전시해 놓은 것에서 작은 전시로 전환하기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드디어 전시에서 벗어나는구나!’하며 기뻐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연초부터 전시를 하라는 과장님의 부르심에 순간 좌절했다. ‘아 나는 전시에서 벗어날 수 없나보다.’라고. 그렇지만 ‘어쩔 수 없지. 나의 업보인가보다’ 하고 바로 달릴 준비를 했다.
누군가는 그랬다. 작은 전시니까, 빨리 준비해서 빨리 전시하면 되겠다고. 그런데 나에게는 두 가지 병이 있다.
하나는 전시 준비를 위해 계속 내용을 파고든다는 점. (안 그래도 되는 부분이 있는데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다른 하나는 무언가에 감정 이입을 깊게 한다는 점.
첫 번째 것은 기한이 짧았기에 나답지 않게 쉽게 포기할 수 있었는데, 두 번째 것은 포기되지 않았다. 무엇에 감정이입을 했냐고? 바로 소설과 드라마 팬들에게였다.
그 당시 우리 과 인스타에 그 책이 전시되었다는 소식을 올렸더니, 지방에서 올라와서 전시를 보고 싶은데 언제부터 전시하는지 미리 알고 싶다는 댓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방에서부터 몇 권 안 되는 이 책을 보러 온다는데, 대충 전시할 수 없어 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 책은 총 10권이 남아 있었다. 3권부터 10권을 우리 박물관이, 1~2권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었다. 1~2권은 이 전시를 위해 반드시 나와야 했다.
그 이유는 드라마 속 주인공과 친구들이 필사를 한 연도가 1권에 쓰여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2권의 소장처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소장자 이름은 10여년 전 논문에 쓰여 있었다. 이름만 나와 있고, 누군지 알 수 없는 개인. 교수라고 되어있는데 어느 과인지는 모르겠고, 또 논문을 쓰신 분은 현재 소속도 모르겠고! 동명이인에게 전화를 다 돌려보자 하는 마음에, 한 분을 찍어 전화를 했다.
그런데 이런 것이 바로 운 좋다는 뜻일까? 바로 그 책을 소장한 분이었다.
나의 운은 한 번 더 찾아왔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생기는 행운은 운이라 할 만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왜 대여하고 싶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책을 빌려주셔도 감지덕지할 마당에, 내 말에 답하신 내용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그 책이 그렇게 중요한 책이라구요? 그럼 박물관에 기증할께요.”
“네? 기증을 하신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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