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의 특별하지 않은 박물관 이야기

학예사들의 또 다른 습관 : 온전히 전시를 즐기지 못하는 이유

by 느린 산책자 2023. 5. 22.
반응형

언젠가부터 전시를 즐겁게 보지 못하게 되었다. 

아니, 전시를 전시 그대로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것도 습관이자 강박이라면 그렇다 할 만 한 것이다.

그리고 사실 지난번 에피소드에 끼워넣지 못했기 때문에, 별도로 쓴다는 것을 고백해둔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

이런 말을 들은 때가 있었다. 

“학예사인데 다른 전시를 보며 느꼈던 점이 없냐고.'

새로운 전시 구성안을 내밀었더니, 다른 전시를 보고 참고할 만한 것이 없었냐고 물으시면서 하셨던 말이었다.

어떤 의도로 하신 말인 지는 지금은 알지만, 전시를 몇 번 하고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나는 학예사가 되기 전에도, 전시를 열심히 보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작품에 쉽게 감동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피카소 작품을 보면서 그 아이디어에 너무 감탄해서 눈물이 나왔다는 친구 말에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나였다.

한 전시를 두세 시간 보았다는 친구 말에, 명색이 미술사학도인데 나도 열심히 보겠다고 전의를 불태웠지만 그것도 잠시, 나의 관람 시간은 한 시간 반 정도가 최대치였다.

그래도 전시 기획자가 기획한 대로 순차 대로는 전시를 본 것 같다.

그리고 그때는 전시된 유물을 보러간다는 생각이 강했지, 연출이나 유물 디스플레이를 어떻게 했는지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피카소의 눈물을 흘리는 여인. 친구가 피카소 그림을 보면서 감동받아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 말에 너무 놀라웠던 기억이 난다.


학예사가 된 이후에도 전시를 보는 방법이 딱히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전시를 몇 번 해 보니 보는 것이 달라졌다.

기획자가 이 주제를 관람객에게 보여주려 어떤 면에서 고민했는지, 어떤 식으로 유물을 디스플레이를 했는지 등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재료를 썼는지, 어떤 색을 썼는지 등도 눈에 들어왔다.

나 또한 전시를 기획하면서 고민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렇기에 그분이 나에게 한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었다.

전시를 해 봐야 보이는 것이었으니까! 


전시를 보는 방법 

그래도 이러한 변화가 좋지만은 않았다. 전시 기법이나 연출, 텍스트 등에 신경을 쓰다 보면 유물을 제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전시를 이렇게 보기 시작했다.

일단 한 바퀴 빠르게 돌아본다. 이때는 전시 기법 등만 빠르게 훑어보는 것이다. 텍스트를 크게 크게만 보고 원하는 장면을 사진 찍는다. 

두 번째는 글을 조금씩 읽어나가면서 유물 위주로 본다. 그러면 원하는 만큼을 볼 수 있고, 전시의 강약을 볼 수 있다. 물론 나는 체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전시 정도나 이렇게 본다. 

그리고 혼자 보는 전시 정도나 이렇게 본다. 두 번 보는 것은 같이 보는 분들께는 민폐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양자를 다 보고 싶은 분들께는 이 방법을 권한다. (이 외에도 공유하고 싶은 것이 여러 가지이긴 한데, 그건 별도의 글로 쓰기로!)

그런데 쓰고 나서 보니 전부 나의 이야기다. 제목은 ‘학예사들’인데! 하지만 아마 전시를 해 본 학예사라면, 나와 같은 증상을 느낄 것이니 ‘학예사들’로 총칭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전시를 보며 느끼는 것들

한편으로는 나는 전시를 보면 늘 배가 아프다. 예쁜 유물이 있을 때는 나도 이런 유물로 전시해보고 싶다거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엿보일 때는 나도 이런 아이디어가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부끄러워서 입 밖에 내질 않았었는데, 어느 순간 인정하기로 했다. 부러우면 보고 또 배워서 이전의 나보다 잘 하면 된다. 

전시를 즐겁게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은 실은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말이다. 

나는 매우 부러워하며 전시를 보고, 감탄하며 전시를 본다. 

실은 복합적인 의미로 즐거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