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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

크레용파스로 그린 조선후기 지방지도?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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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지나 地志에 수록된 지도는 대부분 해당 관에서 그려서 올리니 기법이 상이한 것이 더러 있다. 이 다경포진 지도는 약간은 회화적 기법이 보인다.

*** 태식補 ***

이 지지 주인공인 다경포진성多慶浦鎭城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 글이 있다.

전라남도 무안군 운남면 성내리 원성 안에 있다. 서쪽으로 신안군 압해도가 서로 마주 보이고, 서북쪽으로 해제면 임수리 뒷산이 보이는 곳에 위치한 다경포진성은 1895년 설진된 수군만호성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중종 10년에 시축(始築)하여 둘레 980척, 높이 12척의 석성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다경포진성은 원래 영광군의 월경지로서 나주목(羅州牧)에 속하였으며 소속 목장이 있어 지금의 항목(項牧)이라는 곳에서 말을 길렀다고 한다.

한편 성종 12년(1481)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의 함평현(咸平縣) 관방조(關防條)의 기록에 의하면 다경포진성은 임치진(臨淄鎭) 관할이었으며 후에 진도진관에 소속되어 강량이 최후의 수군만호로 근무하였다. 다경포진성은 하부는 90×60m 크기의 방형돌로 축성하고 상부는 작은 석재를 이용해 축성한 타원형의 성지로서 대부분 훼철되고 남동측의 150m 구간에 5m 높이로 대체로 양호하게 남아있다. 성의 구조로 보아 해안쪽은 석성, 산쪽은 토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주변에서 와편, 석재들이 발견된다.(최인선)

참고문헌
무안군의 문화유적(목포대학교박물관, 1986)

출전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성곽봉수편) - (성곽편)

살피니 성곽은 공중에서 내려다 보면 불규칙 동글배기 혹은 타원형이라, 이것이 곧죽어도 동서남북 쫙 맞추는 동시대 중국의 방형方形 성곽과는 전형으로 갈라지는 대목이다. 성문을 보통 남문을 대문으로 삼지만, 이곳은 남대문이 없는 대신 동문과 서문 양쪽만 텄다.

그 안에는 관사官舍가 북극성 위치를 차지하니, 북쪽 정중앙에 배치하고, 그 전면 양쪽에다가 협시보살처럼 객사와 창고를 양날개로 두고서 그 중앙 통로로 삼문三門을 두었다. 다시 그 앞쪽 동서쪽으로는 사령청使令廳과 무사청武射廳을 두었고 남쪽 중앙 서쪽에 약간 치우친 지점에는 장리병청將吏幷廳(이리 읽힌다)이 있었다.

성 주변으로 村들이 있어 나화촌奈化村 진촌鎭村 목촌牧村 남촌南村이 보인다.

성곽 바깥, 바다에 임한 데에는 선직청船直廳이 보이는데, 선박 관리 담당을 했던 곳이 아닌가 한다. 이에서 관리했을 선박 종류로는 전선戰船 병선兵船 방선防船 일사후선一伺候船 이사후선二伺候船이 있어, 이 중에서 일사후선 이사후선은 사후선이 두 척임을 표시한 것이 아닌가 한다. 명칭으로 보아 척후 담당이다.

문제는 전선 병선 방선이 대체 명칭만으로는 그 역할 구분이 쉽지 않다.

이 무렵 이 군사기지에서 관할하는 지역 인구 사정을 100호라 적었다.

이에서 관장한 섬들도 보이니, 북쪽에 매미섬 蟬島가 있고, 아래를 내려와 매화섬 매도梅島? 고이도古耳島 같은 데가 보인다.

어디가 동서남북인지를 南과 北만 표시했다. 西海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고유명사는 아닌 듯하고 서쪽의 바다라는 뜻에서 부른 것이 아닌가 한다.

저 일대는 내가 현장을 본 적이 없어 더 보태거나 뺄 것이 없다. 그나저나 이 지도를 왜 느닷없이 행주기씨가 들고나왔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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