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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클레오파트라는 흑인이었나? by 유성환

by taeshik.kim 2023.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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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아닌 클레오파트라 흑인 논쟁이 촉발되었습니다. 5월 10일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될 «퀸 클레오파트라»(Queen Cleopatra) 주인공을 흑인으로 묘사한 데서 비롯된 것인데요.

자히 하와스(Zahi Hawass: 1947년-현재) 전 국립고대유물관리청 장관을 비롯한 많은 학자가 그리스 지배기 클레오파트라 7세 필로파토르(Cleopatra VII Philopator: 재위 기원전 51~30년)는 그리스계 –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마케도니아 출신 – 왕족 후예였기 때문에 흑인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넷플릭스의 역사 고증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관련 기사 (1):
https://egyptindependent.com/hawass-criticizes-depicting-cleopatra-as-black-in-netflix-film/

Hawass criticizes depicting Cleopatra as black in Netflix film - Egypt Independent

Will Smith, African American, wife, Cleopatra

egyptindependent.com



알렉산드로스 3세(Alexander III: 재위 기원전 332~323년)의 페르시아 원정 이후 이집트에 수립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기원전 332-30년)는 그리스 본토와는 달리 고대 이집트 왕실의 근친혼 방식을 따랐기 때문에 생물학·유전학적으로 클레오파트라가 흑인일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문제는 클레오파트라 7세를 현실적으로  묘사한 인물상이나 조형예술 작품이 여왕 통치기에 이집트에서 그리 많이 제작되지 않았다(혹은 이후 대부분 소실되었다)는 사실인데요.

하지만 당시 주조된 주화나 덴데라 신전 벽면에 새긴 그녀의 부조 등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소수 도상을 보면 그녀의 외모가 흑인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Bust of Cleopatra VII - Altes Museum - Berlin - Germany 2017 from wiki



제3 중간기에 해당하는 제25 왕조(기원전 747~656)에 피예(Piye: 기원전 747~716)·샤바카(Shabaqa: 기원전 716~702)·타하르카(Taharqa: 기원전 690~664) 등과 같은 누비아 출신 흑인 파라오가 한때 이집트를 지배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현존하는 인물상 묘사나 문헌에 언급된 내용을 근거로 중왕국시대 제11 왕조 멘투호텝 2세(Mentuhotep II: 기원전 2055~2004)나 제12 왕조 아멘엠하트 1세(Amenemhat I: 기원전 1985~1956), 그리고 신왕국시대 제18 왕조 아멘호텝 4세/아켄아텐(Amenhotep IV/Akhenaten: 기원전 1352~1336) 등의 파라오가 흑인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된 적은 있습니다만

클레오파트라 7세가 흑인이라는 주장이나 묘사는 역사적으로 근거가 매우 희박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한데 이런 논란은 다큐멘터리가 제작될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Most likely a posthumously painted portrait of Cleopatra with red hair and her distinct facial features, wearing a royal diadem and pearl-studded hairpins, from Roman Herculaneum, Italy, 1st century AD from wiki



우선 다큐멘터리 프로듀서가 윌 스미스(Will Smith: 1968~현재) 배우자인 제이다 핀켓 스미스(Jada Pinkett Smith: 1971~현재)이고 «퀸 클레오파트라»가 ‘아프리칸 퀸’(Africa’s Queens) 시리즈 중 하나로 제작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는 클레오파트라 7세를 흑인으로 설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참고로 ‘아프리칸 퀸’ 시리즈 첫 번째 에피소드인 «은징가»(Njinga)는 지난 2월부터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된 바 있습니다.]

아마도 다큐멘터리 제작자 중에 서구 문명 모태가 되는 이집트 문명이 아프리카 문명 중 하나라는 ‘아프리카 중심주의’ Afrocentrism에 경도된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중심주의’(-centrism)가 문제이듯, ‘아프리카 중심주의’를 따르는 사람들 역시 특정 사안을 객관적으로 보는 대신 자신들의 주장에 유리한 증거들만을 취사 선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집트학계에서는 ‘아프리카 중심주의’에 기반한 이론이나 주장을 대체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A Roman Second Style painting in the House of Marcus Fabius Rufus at Pompeii, Italy, depicting Cleopatra as Venus Genetrix and her son Caesarion as a cupid, mid-1st century BC from wiki



예를 들어, ‘아프리카 중심주의’에 속한 사람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케메트(Kemet), 즉 “검은 땅”(Black Land)이라고 부른 이유가 자신들이 흑인들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나일 강이 주기적으로 범람하던 당시 이집트의 지리적 상황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클레오파트라 7세와 관련한 지금까지 논쟁은 대부분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다시 말해 과도한 ‘유럽 중심주의’(Eurocentrism)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경우 클레오파트라 7세는 대개 로마=서구의 강직한 영웅들을 자신의 매력으로 미혹하여 파멸로 이끄는 팜 파탈(femme fatale)로 묘사됩니다.

특히 로마시대부터 수많은 작가가 남긴 터무니 없는 억측과 비방은 이후 이집트의 매력을 체화體化한 비운의 여왕·희대의 악녀·치명적인 요부 등으로 대변되는 클레오파트라 7세의 “역사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일례로, 로마제정 시기 역사가 섹스투스 아우렐리우스 빅토르(Sextus Aurelius Victor: 320~390년경)가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로마의 저명인사들에 대하여』(De viris illustribus ubris Romae)에서는 클레오파트라 7세를 희대의 색녀色女로 묘사하는데(86.2),

“그녀의 색욕은 채워질 줄 몰랐고 그래서 그녀는 종종 창녀 행세를 했는데...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에 수많은 남성이 하룻밤(의 쾌락)을 위해 목숨을 지불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William Shakespeare



아울러 플루타르코스(Plutarch: 기원전 46~129년경)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 1604년 희곡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Anthony and Cleopatra) 역시 여왕을 강렬한 성적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방종한 여인으로 묘사합니다(2막 2장 241-246행):

“나이가 들어도 시들지 않는 그 교태야말로 언제 보아도 싱싱한데 왜 버리십니까. 다른 여자들은 한번 만족을 느끼고 나면 싫어지게 되지만 여왕에게선 가장 만족을 느끼고 난 순간부터 진정한 욕구를 느끼게 한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에서 가장 야비한 짓도 여왕에게는 괜찮게 어울리거든요. 그러기에 거룩한 신관들도 여왕의 방종함만은 축복할 지경입니다.”

한편 «퀸 클레오파트라» 주연을 맡은 에이델 제임스(Adele James: 1997~현재)는 이번 논란과 관련하여, “캐스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프로그램을 보지 마라”(If you don’t like the casting don’t watch the show)는 입장을 트위터를 통해 밝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마도 자신을 둘러싼 논쟁이 불쾌했던 것 같습니다.

[그녀가 이집트 여왕으로 묘사된 장면 중에는 2마리 코브라로 장식된 왕관을 쓴 장면이 있는데 이렇게 2마리의 코브라 – 우레우스(uraeus) – 로 장식된 왕관은 제 25 왕조의 흑인 파라오들이 착용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도 제작자들이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누비아 출신 파라오들이 이집트를 다스린 제25 왕조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관련 기사 (2): https://egyptindependent.com/if-you-dont-like-the-casting-dont-watch-the-show-cleopatra-star-responds-to-race-controversy/

"If you don't like the casting, don't watch the show" - Cleopatra star responds to race controversy - Egypt Independent

Actress Adele James commented to controversy regarding her casting for the upcoming historical drama “Queen Cleopatra”, produced by Netflix, which brought complaints that a black woman was not correct for the role of Cleopatra.

www.egyptindependent.com



끝으로, 대중문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에서 지금까지 누가 클레오파트라 7세로 캐스팅되었는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시기적으로 보면 1934년 작 「클레오파트라」(Cleopatra)에서는 클로데트 콜베르(Claudette Colbert: 1903~1996)가, 1954년 작 「시저와 클레오파트라」(Caesar and Cleopatra)에서는 비비언 리(Vivien Leigh: 1913~1967)가, 1963년 대작 「클레오파트라」(Cleopatra)에서는 엘리자베스 테일러(Dame Elizabeth Rosmond Tayler, 1932~2011)가, 2002년 개봉된 프랑스 영화 「아스테릭스: 미션 클레오파트라」(Astérix & Obélix: Mission Cléopâtre)에서는 모니카 벨루치(Monica Bellucci: 1964~현재)가 각각 여왕 역할을 소화했습니다.

아울러 최근 미국의 HBO·영국의 BBC·이탈리아의 RAI가 공동 제작하여 2005년부터 미국 등지에 방영되기 시작한 TV 시리즈 「로마」(Rome)에서는 잉글랜드 배우 린제이 마셜(Lyndsey Marshall: 1978~현재)이 클레오파트라로 분한 바 있습니다. [모두 백인 여배우들이죠? PC 차원에서 논쟁이  될만 합니다.]

이번 논쟁에 대한 판단은 아래 링크된 예고편을 보시고 페친 여러분들께서 직접 내려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관련 링크: https://m.youtube.com/watch?v=IktHcPyNlv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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