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하면 중국이요 중국하면 도자기이던 시절이 있었다. 오죽하면 도자기를 영어로 china라 했겠는가.
옛 드라마 대사를 빌리자면, "도자기는 중국의 자존심이다." 그런 만큼 여기 고궁박물원 소장품 상당수도 도자기요, 할당된 전시공간도 아주 널찍하다.
전시 개관 패널에 한국어가 들어갔다. 워낙 한국인이 많이 오니 그에 맞춘 모양인데, 급하게 하느라 치명적인 오타가 생겨서 고친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한다.
하여간 중국 선사시대의 채색도기, 흑도 같은 것으로부터 도자기 전시가 시작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전시 기법 자체는 우리네 국립박물관과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다만 전시공간을 전체적으로 밝게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짚고 싶다.
우리는 공간을 어둑하게 하고 유물에 조명을 비추어 강조한다. 유물의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지만, 그러다 보니 정작 유물을 보기가 쉽진 않다.
어떨 땐 패널이나 설명카드를 읽기도 버거울 정도로 어두워서, 안전사고가 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런데 여기는 (특별전을 제외하면) 전시실이 비교적 밝다.
그만큼 전시품을 자주 교체하거나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관람객이 다니며 보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둘 다 분명 장단점이 있다. 설명카드 글자 크기가 또 시원시원해 읽기 편했다.
고궁박물원의 자랑거리라는 아이 베개, 양귀비를 본떴다는 당나라 도용, 이파리 띄워 구운 흑유 다완, 건륭제가 좋아했다는 화려한 법랑채자기도 볼 만 했지만,
나에겐 <선화봉사고려도경>을 읽으며 상상하고, 또 도록에서 보고 그려보던 그 여요 자기만큼 인상적인 게 없었다.
"아 이 푸른 때깔이 휘종이 말한 우과천청雨過天靑인가, 저 접시는 설마 태사 채경蔡京(1047~1126)이 썼던 것일까, 어 저건 고려청자와 판박이구만!"
속으로 읊고 겉으로 사진 찍으며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아아, 저 퐁당 빠지고 싶게 생긴 은은한 푸른빛이라니. 망국의 군주 휘종께서 취향만큼은 십전노인 건륭제보다 몇 수 위셨군요.
명대 오채 자기를 전시한 진열장 앞에서 가이드가 한 마디를 덧붙인다.
저 닭 무늬를 그려넣은 잔과 거의 같은 게 경매에서 어마어마한 값에 낙찰되었는데, 산 사람이 거기 차를 따라 마셨다더라고.
아무리 "내 물건 내 맘대로"라지만, 자칫 찻물 따르다 주전자 입구에 부딪혀 거기 금이라도 갔으면 어땠을지 아찔해진다.
한편으로, 가치를 가격으로 환산하는 일에 어느 순간 무뎌진 나 자신을 돌아보게도 되었다.
끄트머리, 청말 분채 화병을 보고 도자 전시공간을 나오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아, 저 도자기가 품었던 옛 사람의 꿈은 지금 다 어디로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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