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무덤은 동시대 한반도 다른 문화권과 구별하는 여러 특징이 있으니 개중 하나가 그것이 자리하는 지점이다. 신라가 크게 보아 평지에서 산기슭으로 이동했으니, 이는 백제 역시 마찬가지라, 다만 이 두 문화권 무덤 자리를 볼 적에 가장 큰 차이는 봉분이 도드라지는가에 있으니, 신라가 평야지대 적석목곽분 전통을 못내 떨치지 못하고 여전히 봉긋봉긋 C컵을 유지했다면, 백제는 표식인 봉분이 있는둥마는둥 했다.
그에 견주어 가야무덤 역시 크게 보아 평야지대에서 산으로 이동하기는 했지만, 이 친구들은 참말로 요상하게도 우린 백제도, 신라도 아님을 부러 강조하기 위해서였는지, 날망 만데이를 따라서 쪼르륵 공동묘지를 만드는 이상한 시스템을 선보했다. 그래서 가야 무덤은 산능선 꼭대기를 따라 올긋볼긋 엠보싱 화장지를 연상케 한다.
이런 가야 무덤 위치 특징은 현대에 와서는 그 무덤이 위치하는 선 자체가 실은 탐방로로 발전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산에서 다니는 길은 거개 능선이다.
대가야는 500년이나 지속한 무지막지한 가야 제국諸國 일원이면서 김해 금관가야와 더불어 가야 제국 중에서도 서열 1, 2위를 다투었다. 그네들의 왕궁이 어디 있었는지 이제 겨우 편린을 보이기 시작했거니와, 생전에 왕이 산 집인 왕궁은 여간 종적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데 견주어, 그네들이 죽어서 산 집, 곧 왕릉은 지산동고분군이라 일컫는 곳이다. 이곳 역시 무수한 대가야 시대 무덤들이 주로 능선을 따라 도토리 키재기하 듯 분포한다.
지산동고분을 탐방하는 사람이 많아지니, 그 능선을 따르는 탐방로 공사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즈음해 고령군이 2017년 6월 이래 2019년 6월에 걸쳐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대동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해 탐방로 건설 예정지점 사전 발굴조사를 하게 했으니, 예상대로 현재도 남은 우람한 봉분 말고도 그 봉문이 켜켜한 세월 흐름에 깎여나간 무수한 무덤이 출현했다.
전체 탐방로는 길이 2.4㎞, 폭 2m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무덤은 열라 많았다.
지산동고분을 중심으로 대가야 문화를 전문 전시홍보하기 위한 고령군립 대가야박물관이 마련해 지난 18일 개막하고 오는 10월 17일까지 이곳 기획전시실에서 계속하는 <길에서 찾은 보물> 기획전은 바로 저 탐방로 공사 발굴성과를 집약한 자리다.
조사단인 대동문화재연구원과 공동기획한 이번 전시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한 대표 무덤과 출토 유물을 통해 대가야 문화양상을 소개하는데 주력한다. 요새 전시 흐름 대세로 자리잡은 수장고형 전시를 채택해 각종 대가야 토기를 찬장 전시토록 함으로써 토기에 질리도록 했다.
논란이 적지 않긴 하지만 가야건국신화를 모티브로 했다는 흙방울을 비롯해 세로로 긴 철판투구, 곧 저네들 왜계 찌거기 말로는 종장판주縱長板冑라는 것과 금동관모, 깃대꽂이, 그릇에 담긴 참돔뼈 등 500여 점을 쏟아내 보여준다.
혹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 그리고 가야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들려보기 바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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