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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태대각간, 옥상옥에 다시 얹은 집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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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록산 사사명의 난이 낳은 최고 스타는 곽자의와 이광필이었다. 

안록산의 난이 진압 기미가 있는 시점에 급하게 황제 자리에 오른 숙종이 이미 "두 사람은 더 이상 전공을 포상할 방법이 없는데, 안록산의 난이 평정되면 무슨 자리를 덧붙여 주는가"를 걱정할 정도였다. 

이런 고민에 똑같이 봉착한 이가 신라 문무왕이었다. 

신라가 백제에 이어 고구려를 멸하자, 그 최대 공신 김유신을 포상할 방법이 없었다. 

군신이 머리를 싸맸다. 

모르긴 해도 이런 말이 오갔을 것이다. 

"저 영감을 달래긴 해야는데, 이미 직급도 대장군이요 대각간인데 자칫하면 삐질 텐데 도대체 뭘로 보상한단 말이요?"

이런 고민이 한참 이어지다 누군가 이런 제안을 냈다. 





"대각간이 최고 아입니까? 그럼 대각간 우에 한자리 더 만듭시데이"

"거 좋은 생각이데이. 그라마 대각간 웃자리는 머라 칼꼬?"

"머 글자 한글자만 더 보태주마 갠찮을끼라요. 太자 하나 더 붙여줍시데이"

신라사에서 태대각간 혹은 태대서발한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관작이 이렇게 해서 생겼다. (2016. 1. 2)


***


김유신은 훗날 아예 흥무대왕興武大王이 된다.

이것이 두고두고 역사가들한테 씹히는 빌미가 되는데 아무리 신하가 공이 높아도 왕이 될 수는 없다는 논리 때문이었다.

이것이 맞는 말이다..

태太 혹은 大라는 말을 덧붙여 자리를 늘여가는 방법은 가장 고전적이라

아찬 우에 대아찬을 두고
나마 우에 대나마를 두고
각간 우에 대각간을 둔 일

이 다 그에 해당한다.

백제의 경우 상좌평처럼 上 이라는 글자를 덧보태기도 했다.

저들이야 직급 차이라도 있지 태대각간은 그렇지도 아니해서 실상 별의미가 없다.

함에도 뭔가 급이 다르다는 표식이 필요했으므로 고심 끝에 저리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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