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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 석탑 봉영사리기가 발견, 공개되기 전에 이미 나는 여러 번 단언했다.
“선화공주는 때려죽여도 백제 무왕의 정비(正妃)일 수는 없다. 정비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자칫 대통령이 탄핵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했다가 결코 그리 하지 않은 새누리당 대표 이 머시기 꼬라지가 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이렇게 장담했다.
나는 내 저 장담이 내 생전에 증명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데 정말로 느닷없이 출현한 백제시대 금석문이 백제 무왕의 정식 왕비는 신라 출신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좌평 사탁적덕의 딸임을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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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공주의 비밀을 파헤친다] (4) 화랑세기 자매편 상장돈장上狀敦牂과 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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