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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태안 신두리 해안 사구沙丘를 상념하며

by taeshik.kim 2024.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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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도 혹 묻지 않았을까? 왜 사는지를?

 
내가 저짝 현업에서 그 담당 기자로 한창 일하던 시절, 천연기념물 중에 구역 지정과 관련해서는 크게 두 곳이 기억에 각인하는데 하나가 결국은 만신창이 난 강화도 갯벌이 개중 하나요 다른 하나가 태안 신두리 사구다. 

저 신두리는 그 지정에서부터 그 소식을 기자로서 전했거니와, 이후 그와 관련한 간헐하는 소식을 뎟보태기도 했거니와 문화재청 관련 자료를 검색하면

지정 등록일이 2001년 11월 30일이요, 그 지정 면적은 2024년 3월 기준 1,702,165㎡다. 면적이 굉장히 넓다는 점이 우선 에 띤다.

이것이 현재 기준이요 자료를 찾아봐야겠지만, 애초 지정 면적과 넒나듦이 있지 않았나 하거니와, 이쪽도 민원 다발 구역 아닌가 한다. 

지정일 기준 현재까지 만 22년 4개월 정도가 흘렀거니와, 놀랍게도 나는 저 지역을 단 한 번도 찾은 적이 없었다.

몇 번 가 볼 기회가 있었지마는 어찌하다 다음번 다음번을 기약하고는 저리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 해서 막상 가 본들 무슨 남다른 감회가 있겠는가?

한때 젊은 시절, 그래도 기자랍시고 그 사명이 훨씬 충만하던 시절 한 편린을 떠올리는 것 이상도 이하도 없다.

그럼에도 무슨 인연인지 지금은 그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져버렸지만, 그래도 문화재업계 초창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몇 군데 중 하나라는 점에서 그래도 못내 그쪽을 여직 보지 못한 미안함은 있다. 
 

변했을까?

 
그러다 어찌하여 대학 친구들과 태안을 가기로 한 김에, 오직 정한 데라고는 어떤 친구가 그쪽 간월암 낙조를 보고 싶다기에, 마침 그 친구 생신이라 해서 그래 죽은 놈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멀쩡하게 살았는 친구놈 소원 하나 들어주지 못하냐 해서 오직 그 간월암 낙조만을 점찍고는 태안으로 내달렸다. 

내려가는 동안 계속 저 간월암을 제외하고서는 행선지가 바뀌었으니, 태안해양유물전시관 인근에 가서 그 작은 안흥항인가? 하는 항구 꼬나보며 커피 한 잔 때릴까 해서 그짝으로 내비를 찍었다간 에잇 모르겠다 해서 그대로 내달려 이른 데가 신두리 해안 사구다. 

그래도 명색이 근 20년 문화재 담당 기자 생활을 했다는데 이런 데 한 번 와 주지 못한 쪽팔림이 없지는 않았으니, 그런 쪽팔림을 20년이 더 지나서야 풀다니, 것도 현업을 떠나고서 이렇게나마 풀었으니 그런 대로 후련함은 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내가 즐기러 간 것도 아니요, 다들 이제는 환갑을 코앞에 둔 친구 녀석들 바람이나 쐬어 주자, 그래 이 정도면 적어도 이런 델 데려왔냐 핀잔은 먹지 않겠다 하는 마음씀도 없지는 않았거니와, 다행히 다들 이곳이 마음에 든다니 나로선 여간 다행이 아니다 싶기는 하다. 

신두리 해안 사구는 우리한테 익숙한 해수욕장이라 보아 대과가 없다. 실제 이 지역을 중심으로 곳곳에 만리포니 천리포니 하는 해수욕장이 분포하거니와, 그런 해수욕장이야 해수욕장으로 개발이 되어서 그렇지, 그렇지 아니했던들 이와 아주 흡사한 생태 양식을 보였을 것임에는 틀림없다. 
 

 
다행히 그런 개발에서 몇 걸음 뒤쳐지는 바람에 혹자는 이르기를 한반도에서는 유일한 사막이니 뭐니 하는 별칭이 생겼을 것이다. 

이곳이 계속 천연기념물 혹은 그와 아주 흡사한 해수부 관장 해양보호구역이 아니었던들, 이곳 역시 그냥 평범한 해수욕장으로 개발을 가속화했을 터다. 

이곳은 한반도 유일한 사막이 아니라, 그렇게 흔한 해안 사막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용케도 개발 붐을 피한 데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곳은 무엇을 얻었을까? 문화재보호구역이 되고 해양보호구역이 되어 무엇을 얻었을까?

그 얻음은 무엇인가에 대한 포기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 물음이 계속 현장에서 맴맴 돌았다. 
 


그때 그 시절에는 이런 일이야말로 후세를 위하며, 이것이 자연보호 환경보호하는 일이라 스스로를 세뇌하며 그런 소식을 전하는 나 자신이 무척이나 뿌듯했으며, 그런 일을 종사하는 나야말로 참말로 좋은 일을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 지금은 없다. 

나는 무엇을 믿었을까? 그 믿음이 그때는 확고하고 당연하며 그것이 역사의 진보라 믿었지만, 그것이 어디 있는지 지금은 알지 못한다. 

아직은 찬 바닷바람이 만들어내는 켜켜한 모래무지 물결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리 묻고묻다가 썩소가 다른 곳도 아닌 내 얼굴을 지남을 뒤늦게서야 눈치챘다. 

무엇을 위해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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