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필자는 한국은 벼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땅으로 이렇게 높은 위도까지 벼농사가 끌어올려지면서 촘촘한 시간표에 따라 부지런히 농사 짓고 하늘의 비를 애타게 기다려야 하는 초조한 농법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각설하고-.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혼분식장려에 도시락에는 반드시 잡곡을 30프로 이상 섞어야 했다. 학교에서 도시락 뚜겅을 열어 잡곡 퍼센트를 선생님들께서 체크했다.
필자가 다니던 학교는 왜인지 콩은 잡곡으로치지 않았다. 아마도 보리를 넣으라는 것 같은데, 콩이나 보리나 어차피 잡곡인데 야단을 맞고 억울했던 기억이 있다.
이 당시 통일벼라는 것이 있었다. 내 나이 또래는 다 알 것이다.
이 통일벼는 못먹고 산 당시에 배 부르게 한 번 먹어보자는 시대정신이 낳은 산물이라고 할수 있는데, 밥맛이 없다거나 억지로 시행했다거나 하고 폄하하는 글을 보지만, 그것은 나름대로 그 시대의 시대정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수출 주도 정책으로 한국 경제 기반을 닦은 박정희가 식량자립, 자립적 경제만큼은 손에서 마지막까지 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박정희가 수출주도의 완전히 개방된 경제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면, 아마 식량자립은 포기하고 번 돈으로 쌀 수입이라는 간단한 방법을 채택했을 것이고, 어떤 면에서 70년대 말 한국경제의 위기를 낳은 중공업투자는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 그것이 결국 한국 경제가 단순히 하청위주의 경제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한 시금석이 되었지만.
그런 면에서 박정희는 민족주의적 경제정책의 마지막 세대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시한번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통일벼는 수확량이 많았다. 그래서 박정희 집권 말기에는 한반도 안에서 난 쌀로 한국인들을 백프로 먹여 살릴 수 있는 자급까지 이룰 수 있었다.
대개 통일벼는 수확량은 좋은데 밥맛이 없다는 것으로만 기억하는 분이 많은데 통일벼는 사실 우리가 먹는 단립종에 소위 안남미라 부르던 장립종을 교배하여 탄생시킨 종자이다.
인디카 쌀의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확량은 많지만 한국인들 입맛에 맞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옳다.
문제는 이 쌀이 가지고 있는 인디카적 특성 때문에 추위에 약하다는 결점이 있었다. 이것은 통일벼가 "냉해에 약하다"는 표현으로 나타나는데 사실 냉해에 약한 것이 아니라 인디카가 한 쪽 부모이기 때문에 한국 기후에 잘 맞지 않는다고 해도 좋다.
그때문에 통일벼는 조금만 추워지면 쉽게 재배에 타격을 받았다.
여담으로 북한에서 이 통일벼를 몰래 들고가 심어보았는데 그쪽에서는 재배가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남쪽보다 기온이 낮아서 일 것이다.
통일벼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한국 쌀농사 속성이 바로 이렇기 때문이다. 단립종 역시 결국 아열대 지역에서 재배되던 것이므로 마냥 북쪽으로 끌어올려 재배할 수 없다.
따라서 쌀이 북상하는 과정은 엄청나게 시간이 많이 소요되던 일이었을 것이다. 추위에 견디는 놈만 살아 남아 다시 그것을 재배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조금씩 북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한계점에 도달한 곳이 바로 한반도다. 한반도에 도착한 쌀농사는 아직 추위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므로 통일벼처럼 "냉해에 약했을"것이 틀림없다.
이런 취약한 종자를 가지고 어떻게든 쌀농사를 지어보려고 악전고투한 우리 조상에게 어떻게 게으르다 할 수 있겠는가.
P.S.) 통일벼는 그 후 맛이 없다는 구박에 "일반미"에 밀려 한국에서는 종적을 감추었지만 2000년대 들어 의외의 지역에서 부활한다.
이 종자가 아프리카에 제공된 후 의외로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수확량도 많고 밥맛도 문제가 안 되고, 더우기 한반도에서 항상 골치거리였던 냉해도 더 이상 문제가 안된다는 것이다.
한반도 혹독한 기후에 견디게 훈련된 종자이므로 아마 아프리카 기후 정도라면 휴양지에 온 것 같다고 생각을 (!)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통일벼는 결국 자기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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