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도작농경이 가능한 정도의 기술 수준이라면 양잠도 당연히 가능했을 것이라고 썼었다.
도작농경 자체도 물론 대단한 수준의 농업 기술이지만, 특히 "한국에서의 도작"이야 말로 매우 복잡해 질 수 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한국은 도작이 제대로 수행되기에는 위도가 너무 높다. 원래 쌀은 이렇게 높은 위도에서 재배되는 것이 아니었다.
열대-아열대에서 자라던 녀석을 북쪽으로 끌어올리다 보니 필요한 일조량을 아슬아슬하게 채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문에 한국의 벼농사는 조금만 시작이 늦거나 종료가 조금만 지체되어도 한해 농사를 망치는 극한의 타임테이블에 따라 움직이는 빡빡한 농사가 되어버린것이다 (원래 쌀농사라는 것이 이렇게 빡빡한것이 아니라는 것은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보면 알수 있다. 이 지역의 쌀농사는 풍부한 일조량으로 우리처럼 빡세지 않다).
게다가 혹시 벼농사가 너무 쉬워질까 걱정이 된 하느님이 한해 강수량을 몰아 뿌리고 비가 내려야 할 때 잘 안내리는 만만찮은 기후까지 선사하여 벼농사 농사꾼은 엄청나게 빡빡한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는 샐러리맨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정해진 테스크를 며칠만 늦어도 농사가 존망의 위기에 처하게 되고 내려야 될 시기에 제때 비가 안 오면 한해 농사가 망하는, 그야말로 매년 아슬아슬한 수준의 농사를 빡빡한 타임테이블에 따라 진행하는, 그런 고도의 농사기술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국에서 벼농사 짓는 수준의 "하이테크" 농부라면 양잠? 당연히 한다.
양잠은 벼농사와 함께 한국으로 들어왔고 두 기술은 셋트로 함께 일본으로 전파되어 야요이시대를 열었다. 그 결과가 삼국지위지 동이전의 아래 기록이다.
其衣橫幅, 但結束相連, 略無縫. 婦人被髮屈 , 作衣如單被, 穿其中央, 貫頭衣之. 種禾稻·紵麻, 蠶桑·緝績, 出細紵· . 其地無牛馬虎豹羊鵲.
삼국지 위서 왜인전 기록이다. 야요이시대의 일본에는 "벼농사를 지었고 모시와 삼이 있고 양잠을 하여 길쌈하고 고운 모시가 있다. 그 땅에는 소가 없고, 말도 없고, 호랑이, 표범, 양, 까치가 없다."
이 기록이 얼마나 정확한것인가 하는것을 보려면 일본땅에 없다는 소와 말, 호랑이, 표범, 양, 까치 등의 기술을 보면안다.
호랑이는 아직도 일본에 없고 까치는 임진왜란 이후, 소와 말은 고분시대에나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갔으니 당연히 그 당시에는 없다. 삼국지 왜인전은 정말 정확한 기록인 것이다.
벼농사를 짓던 야요이시대 일본에는 소나 말은 없어도 양잠은 했고 이걸로 모시까지 짰다는 것이다. 이 기술이 언제 어떻게 들어갔을까? 당연히 벼농사와 함께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야요이 도작농경의 고향인 한반도에도 당연히 벼농사와 함께 들어간 것이다. 적어도 소와 말이 없던 한국의 청동기시대에도 양잠은 있었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빠듯한 스케줄에 따라 벼농사를 짓던 청동기인들에게 양잠은 별로 대단한 기술장벽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대륙에서 들어올 때 다른 것은 다 놔두고라도 쌀농사와 양잠은 들고 들어온것이 아닐까. 먹고 입을 것은 있어야 하니까.
P.S) 삼국지에 양잠에 대한 기록은 왜전 외에 한전과 진변한전에도 모두 존재한다. 한반도 남부일대도 양잠은 당연히 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기록은 삼국지에 있다.
필자가 굳이 왜전이 기록을 예로 든 것은 당시 왜에는 소, 말이 도입되지 않아 이미 소, 말이 있던 한반도보다 도작 농경 도래 후의 상황을 더 잘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양잠이 소, 말 등과 함께 도입되었다면 한반도에는 양잠이 있어도 왜에는 없었을 것이다.
왜에 소, 말은 없어도 양잠은 있었다는 이야기는 양잠은 소, 말보다 더 일찍 일본으로 들어갔다는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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