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고시간 | 2019-07-02 06:30
중앙아시아사 연구자 민병훈 박사, '유라시아의 십이지 문화' 출간
참 희한한 형이다.
형은 재직시절에 끊임없이 책은 퇴직하고서 내겠다고 했다.
그때 이르기를 번역물과 창작물 다 합쳐 대략 10권 정도를 예상하는데, 재직 중에는 낼 시간도 없으니 퇴직하고서 작은 연구실 하나 내고는 열공해서 내겠다고 했다.
나 이런 사람 무지하게 많이 봤다.
나 그렇게 큰소리 뻥뻥쳤다가 공수표 날리는 사람 또한 무수히 봤다.
개중 어떤 이는 퇴임 무렵 그나마 하는 일이라고는 그간 이곳저곳 발표한 논문이나 수상록 엮어 내기도 했다.
물론 흩어진 본인 글을 모아 그것을 엮어낸다는 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을 테고, 그것 역시 적지 않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요하는 일임은 분명하나, 그것이 공부라고 할 수는 없다.
한데 이 형은 독특하다.
그간 쓴 글을 녹이기는 했겠지만, 퇴임 이래 지난 5년간 낸 책은 하나하나 그 자체 완결성을 갖는 묵직한 단행본이다.
그 하나하나가 소우주를 형성하는 진짜 단행본이다.
이번 단행본 '유라시아의 십이지 문화'를 필두로, 같은 창작물인 '실크로드와 경주', 그리고 번역서 '빅토리아의 황금 비보'가 2014년 6월 정년퇴직 이래 낸 책들이다.
중앙아시아 미술사를 전공하는 그는 미술사학도답게 도판을 굉장히 중시하거니와, 이번 단행본에 수록된 도판 600여장 중 아마도 절반 이상은 그가 현장을 누비며 찍은 것들일 터다. 그러는 장면을 나는 직접 여러 번 봤다. 그 열정, 누구도 넘을 수 없다. 그만큼 그의 책 하나하나는 그의 피와 땀이 이룩한 성과물이다.
저번주다. 형이 새 책이 나왔다며 수송동 우리 공장 사무실에 나타났다. 그의 책을 전담해 출판하는 진인진 출판사 김태진 대표와 함께였다. 이번 신간도 보니 역시나 묵직했고, 역시나 도판이 화려해서 무척이나 맘에 들었다.
언론사 대상 홍보를 전연 하지 않는 진인진이었으니, 아마도 형의 등쌀을 못이겨 김 대표가 끌려나온 듯했다. 근간 이 출판사에서 낸 다른 단행본들과 더불어 보라며 잔뜩 내놓는데, 주로 고고학 계통 책들이었다.
박물관맨임을 자처하나 형은 좀 묘하다. 중앙대 사학과를 나오고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하고서 아주 늦은 나이에 박사로 특채되어 들어간 그를 이른바 박물관 주류에서 어떤 시각으로 바라봤을지 짐작 가능하다. 그런 그를 나는 낙하산이라 불렀다.
본인은 아니라는 듯 한데, 낙하산 맞다.
그는 6개월인가 모자라 공무원연금을 받지 못했다. 그가 퇴직할 무렵에는 20년을 채워야 공무원연금 수혜자가 된다는 규정이 있었으니, 딱 6개월이 모자랐으니 원통했을 법도 하다.
요새 어떻게 지내냐니 "마누라 눈치 보며 살지 뭐" 하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짓는다. 어부인이 돈을 버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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