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문화 이모저모

파른본 삼국유사 사건

고 손보기 선생 소장 소위 파른본 《삼국유사》가 공개된 직후, 신라사학회에서 나는 이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사진은 2013년 5월 17일 남영동 저택에서 그것을 준비하면서 찍은 몇 컷 중 하나다.

판본 비교를 위해서는 《삼국유사》 영인본들이 필요했으니, 집에 소장한 《삼국유사》 영인본 너댓 종을 펼쳐 놓고는 파른본과 비교했다.

물론 이런 작업은 연세대가 파른본을 공식 공개하기 전에 대강 이뤄져서, 그 공개 전날 나는 그 분석 결과를 우리 공장 기사로 내놓았다.

비교 대상은 안정복 수택본과 고려대본 등등으로 기억하는데

안정복 수택본은 인쇄상태가 너무 안좋았다고 기억한다.

이것이 판본 자체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인본印本의 문제인지는 내가 확인하지 못했다.

이 파른본은 그 판각 혹은 조선 중종시대 소위 정덕본과 비교할 때 여러모로 그 이전 판본, 그러니깐 고려말 혹은 조선초 판본임이 확실하거니와

더구나 그 부분이 후대 판본에서 오誤탈脫缺漏가 극심한 왕력王曆편을 포함하는 까닭에 그것을 교정할 구석이 적지 않아 역사학계에서는 비상히 주목한 신출新出자료였다.

그것이 생전 파른 소장일 적에 배접을 위해 외부로 유출된 적이 있다.

그때 자료를 내가 전량 입수하고는 대략 2년 이상을 꼬불쳐두다가 그것을 연세대가 기증받아 공개한다기에 그냥 넘어갈 순 없어 내가 기사로써 그것을 분석한 내용을 먼저 공개했다.

그 기사는 순전히 내가 혼자서 파른본을 분석한 성과였다.

발표 당일, 연세대가 발표한 기자회견문을 보면 내 기사를 그대로 퍼다 날랐다.

왜?

내 분석을 뛰어넘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공식 공개되고선 나는 내가 이미 확보한 파른본 《삼국유사》 전량을 신라사학회 회원들한테 공유했다.

이를 토대로 나는 김창겸 당시 신라사학회장과 의논해 파른본 《삼국유사》를 조명하는 학술대회를 긴급히 개최했다.

이런 제반 사정을 전연 모르는 연세대박물관 측에서는 신라사학회와 그 회장 김창겸을 연구윤리 위반이라 해서 각종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김 회장이 곤혹스런 처지에 몰리기도 했으나 아무 문제없음으로 결판나고 말았다.

나중에 파른본 공식 해제 보고서가 연세대박물관에서 나오고 하일식이가 그 해제를 썼는데 그에서 내 논문을 쏙 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