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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가독성을 방해하는 후주後注


이 《안씨가훈顔氏家訓》은 내가 늘 심금을 울리는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거니와, 비단 나만 그렇지는 않아서인지 현재 시중에 유통 중인 번역본만 해도 축쇄본까지 포함한 4종 정도가 된다고 파악한다.

사진은 개중에서도 역자 전공이 이른바 문학사가가 아니라 역사학도 옮김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거니와 나머지는 중문학을 전문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번역한 것으로 안다.  

이 역본을 포함해 이 출판사는 주석을 책 뒤편으로 한꺼번에 몰아넣기는 하는 이른바 후주後注 시스템을 채택한다. 

본문 이해를 돕기 위한 첨언을 주석注釋(혹은 註釋)이라 하며, 그것을 배치하는 위치에 따라 해당 본분 페이지 하단에 배치하는 방식을 각주脚注footnote라 하고, 본문 괄호에다가 작은 글자로 보충한 주석을 협주夾注 혹은 세주細注 혹은 분주分注 등이라 하고, 챕터나 책 뒤 한군데로 몰아낸 것을 후주後注라 한다. 

구미학계나 일본 영향으로 더러 후주를 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국내 풍토에서는 전연 맞지 아니하니, 

무엇보다 국내에서는 주석이 본문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는 일아 많기 때문이다. 

이런 후주는 실상 구미학계와 일본학계에서 많이 채택하는 것으로 우리와는 전연 사정이 맞지 않는 문제점을 노출한다.

그 이유는 상술하면, 서양 학계 주석은 대체로 본문을 읽어내려가는데 지장을 주지 않지만, 국내는 사정이 전연 달라 주석은 본문과 같이 취급해야 하는 일이 허다한 까닭이다.

특히 저런 고전 번역은 생소한 용어가 다대하고 그 용어를 일일이 번역할 수 없는 노릇이라 주석으로 그 설명을 돌리는 일이 많아 실은 주석이라 해도 본문과 같이 움직이는 일이 많다.


후주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해당 본문 페이지 아래로 돌리는 각주로 돌릴 것인가 하는 장단을 예서 논하지는 않으려한다. 각기 장단이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단언커니와 국내 풍토에서는 주석없이는 본문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다. 

한데 그런 사정을 감안치 아니하고 오로지 가독성을 높이겠다고 그런 주석을 뒤로 한뭉탱이로 밀어놓으면 번번이 본문 읽다가 뒤로 가서 주석을 뒤지는 병폐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나 이런 일을 요즘 출판계로서 본다면, 주석이 남발하고 한문을 포함한 이른바 제2 외국어가 빈발하는 텍스트는 대중에게서 채택받지 못한다는 상황과 맞물린 현실이 없지는 않으니, 이 점 역시 고려해야 함은 분명하다.  

어떻든 이 《안씨가훈》을 예로 들면, 주석 없이 이해가 불가한 대목이 너무나 많다.  

다시 말한다. 이 《안씨가훈 》 주석은 본문과 동일체다.

이런 동일체를 뒤로, 그것도 챕터별로 나누어 몰아치기를 하니, 읽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출판업자들은 이런 주석 체계의 상사함과 상이함도 강구하기 바란다.

저와 더불어 국내 학계 글쓰기 풍토에서 각주의 오용 남발에 대한 생각은 별도로 쓴 글이 있으므로 그것으로 갈음하기로 한다. (5년 전 글을 약간 손봐서 전재한다.)


각주론(1) 개설 : 후주後注와 각주脚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