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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기소된 마광수
그의 전법은 폭로였고 대면이다.
그와 동시대를 산 다른 이들이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점잖음이라는 가면 뒤에 감추려 한 그 적나라한 욕망, 인간이면 누구나 지녔을 그 욕망을 그는 그대로 노출했다.
내가 신촌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던 그때, 한창 젊은 국어국문학과 교수 마광수는 《즐거운 사라》를 발간하기 전이었지만, 《가자 장미여관으로》는 그 시절 막 발간했다고 기억하니, 실제 서지사항을 보니 1989년 자유문학사 간이다.
복직 뒤 연세대 첫 강의
나는 이 시집을 정식으로 통독한 적이 없다.
다만 그 제목을 두고 많은 말이 있었으니, 그 무대인 장미여관은 실제 신촌의 여관인 까닭이다.
그때 신촌의 거의 모든 여관은 포르노를 상영했으니, 장미여관이라 해서 평지 돌출이나 이례異例일 수는 없었다.
그가 그토록 상찬한 장미여관이 어떤 곳인지 현지답사를 감행하기도 했다. 돌이켜 보니 내 장똘뱅이 기질은 장미여관에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다만 장미여관이 그리 우리한테는 인기가 없어, 우리가 애용한 데는 그 인근 언덕 후미진 곳 올림픽여관이나 일동장여관이었다.
자야겠다...(2017.9.6)
이런 그가 파란많은 이승을 하직한지 벌써 2년이다. 그에 맞추어 그의 모교이자 교수로 오래도록 봉직한 연세대에서 그가 남긴 그림 30여 점으로 꾸민 전시를 마련했다. 어제(5일) 개막한 이번 전시 '마광수가 그리고 쓰다' 특별전은 올 연말까지 열린다.
현재 파악된 그의 그림 관련 유작은 회화 95점, 판화 14점, 서예 7점, 도자기 10여 점이다. 이를 그의 유족이 지난 7월 연세대에 기증했고, 박물관이 이를 기념한 전시를 기획한 것이다.
마광수 '어둠속의 키스'
송고시간 | 2019-09-04 17:32
연세대박물관서 2주기 맞춰 특별전 개막…회화 30여점 공개
"마광수 미술 특징은 즉흥성…문인화가 기질 갖춰"
생전에는 무수한 논란을 낳았으나, 죽음과 더불어 그 논란도 상찬으로 일순 바뀌었다.
그가 만약 선각자라면 그래서일 것이다.
예수님도 자기 고향에선 미친 사람 혹은 보통사람 취급받지 아니했는가?
저런 사람 특징은
살아서는 골치가 아픈데
죽어서는 그립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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