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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

800년 지난 지금도 왜 그리 멀쩡한가? 팔만대장경의 싱거운 미스터리

by 日莫途遠 2026.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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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판이 멀쩡한 이유는 딴 게 없다. 안 찍었기 때문이다.

 

앞서 팔만대장경 인쇄 이야기를 쓴 바, 

이 이야기를 좀 더 해 보면, 

조선시대 일기 남아 이는 것 중에는 

문집인가 뭔가 판목을 새로 교체하는 이야기 적어놓은 일기가 있다. 

여기 보면 문집판목을 쭉 점검하니, 판목이 많이 뭉개져 도저히 쓸 수 없는 것을 교체하기로 하는데, 

그런 숫자가 상당히 많다. 

목판 하면 우리는 멀쩡한 것만 봐서 그렇지, 

조선시대에 관에 보관된 목판 중 자주 인쇄하는 목판,

예를 들어 사서삼경이나 통감 같은 이런 판목들은

사족들이 종이를 보내 어디를 좀 찍어 보내주쇼, 하면 찍어 보내주는 경우가 많아 

당연히 인기 있는 목판들은 뭉개지게 되어 있다. 

팔만대장경 상태 필자는 당연히 전부 보지는 못했다만, 

그 목판 찍어 놓은 영인본을 보면 뭉개진 부분 하나 없이 모두 멀쩡하니, 

당연히 800년이나 된 인류 최대의 문화 자산중 하나인 이 목판이 과연 몇 번이나 찍어낸 것인가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이 목판을 찍어내는 데 있어 또 한 가지 고려할 사항은 이런 게 있다. 

팔만대장경은 잘 알다시피 목판만 8만장이 넘는데, 

앞뒤 면을 다 새겼으니 찍어 낼때는 16만면을 찍어야 한다. 

우리가 잘아는 A4복사지 한 박스가 종이 몇 장인고 하니, 

그게 2500장이다. 

그러면 만장이면 A4 용지 4박스, 

16만면이면 64박스가 된다. 

따라서 팔만대장경을 10질만 인쇄해도 640박스. 

그런데 팔만대장경 판목크기를 보면 당연히 한 면에 A4두장은 있어야 할거 같지 않나? 

그러면 1280박스이다. 

팔만대장경 열 질 다 인쇄하려면 A4용지 1280박스 분량의 종이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A4용지 한 권이 아니다. 박스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당장 사서삼경 목판 찍어내는 데도 손을 달달 떨며 종이를 내주었던 조선시대에 

1280박스를 들여 팔만대장경 10질을 인쇄헸겠는가. 

일본에서 사신이 와서 단식농성을 하면 찍어줬겠지만

솔직히 이것도 전질 다 찍어줬을지도 의문이다. 

조선시대에는 별로 안찍었다면 고려시대는 많이 찍었을까? 

글쎄다. 

흔히 목판이 만들어지면 당연히 책을 찍어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조선의 종이 수급 정황을 보면, 천만을 말씀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예를 들어 송시열의 문집 송자대전만 해도 

뭔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남아 있는 목판만 일만 장이 넘는데, 

이것 몇 번이나 찍어냈을 것 같은가. 

일만장으로만 잡아도, A4용지 16박스가 필요하다. 

당대 선비들이 아무리 추앙했다 해도 송자대전, 

과연 몇 부나 찍어냈겠는가. 

처음 인출할 당시 한 번 찍어 내고는 땡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몇 부나 찍었는지 모르겠따만. 

목판이라는 건 어찌 보면, 

찍어 내기 위해 새기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을지 모른다. 

조선시대 사족들 독서 폭이 생각보다 많이 좁아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독서광이 아니면 

문과 급제자도 읽는 책은 딱 요즘 한문 서당 수준이라, 

사서삼경에 통감 고문진보, 소학 등등 하고 땡이었다. 

당연히 종이를 구해 인쇄 해달라는 것도 대부분 이런 책이었고, 

그 외에 당시나 문선, 문집류도 좀 있기는 하지만 

당연히 전질 인쇄했다는 이야기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 편집자주 ***

 

목판, 특히 문집 목판은 실무용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주단지였다. 

그 집안 이름난 조상 문집을 새긴 목판을 어찌 모셨는가를 보면 안다. 

그것이 자리한 곳은 딱 사당이었고, 실제 준 사당이었다. 

목판은 이른바 개폼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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