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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평안궁 녹유사족호緑釉四足壷를 생각하매 동시에 보면 좋은 자료들

by taeshik.kim 2023.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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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헤이안경平安京 중심부에서 녹유 바른 네 발 항아리 녹유사족호緑釉四足壷 출토
 

교토 헤이안경平安京 중심부에서 녹유 바른 네 발 항아리 녹유사족호緑釉四足壷 출토

교토 헤이안쿄平安京[평안경] 중심부를 차지하는 헤이안궁적平安宮跡[평안궁적] 한쪽 귀퉁이(지금의 교토시 상경구上京区)에서 녹유緑釉[녹색유약]을 거의 다 바른 사족호四足壷[발이 네 개인

historylibrary.net

 
 
간밤 일본국 경도京都 땅 평안궁平安宮 유적에서 9세기 후반 무렵 제작된 것으로 생각하는 일본국 자체 제작 녹유사족호綠釉四足壺라는 녹색 유약 바른 네 발 달린 항아리가 출토됐다는 저와 같은 소식을 전했으니, 

그에 도자사를 공부하는 이화여대박물관장 장남원 관장이 아래와 같은 자료들을 참고하면 좋다면서 소개했다. 
 

1. 구주국립박물관九州国立博物館 소장 녹유사족호緑釉四足壺 りょくゆうしそくこ

e-Museum - Green-glazed jar with four legs

Glazes can be classified into two categories, depending on their melting temperatures. Low-fire glazes melt at temperatures below 900°C (1652°F), while high-fire glazes melt at temperatures above 1200°C (2192°F). Glazing technology had entered Japan as

emuseum.nich.go.jp

 

 
 
(指定名称) 緑釉四足壺 猿投 1口
陶器 高18.8 口径8.8 胴径22.9 平安時代 9世紀 九州国立博物館

緑薬(ゆうやく)はその熔ける温度によって900度以下の低火度釉と1200度以上という高火度釉に分けられる。日本で最初に焼かれた施釉陶(せゆうとう)は鉛を原料とした低火度釉であった。奈良三彩(ならさんさい)などが代表的であるが、それより早く既に7世紀後半にはその技術が日本に伝わっていた。奈良の川原寺の緑釉塼(りょくゆうせん)や塚廻古墳の緑釉棺台(かんだい)が最も早い例という。

奈良時代、唐三彩(とうさんさい)が日本にもたらされた影響を受け、日本でも三彩陶が作られるようになった。緑と褐に白の三色の彩りであったが、次第に緑と白の二色に、さらには緑彩のみとなる。平安時代には多彩陶は見られなくなり、緑釉のみが中国越州窯(えっしゅうよう)の青磁を写すものとして使われるようになった。

この緑釉四足壺も越州窯青磁を手本として作られた。ただし、本歌が小型四足壺であったのに対して、猿投窯は通常の壺のサイズに大きくして作った。唐三彩写しの奈良三彩の壺が、唐の造形と異なり、奈良時代の須恵器壺に見られる強い造形を見せたのに対し、猿投窯の緑釉四足壺は唐三彩の壺を思わせるゆったりとした造形となっている。胴に凸帯を3段に貼り付け、それに直交させて四本の凸帯を下方に向けて貼り付け、先端は獣脚へと続く。

緑釉四足壺には火葬蔵骨器(かそうぞうこつき)としての使用例が知られており、この四足壺もそうしたものであったのであろう。白い土の上で緑釉が鮮やかな明るい発色を見せており、猿投窯の緑釉の到達点というべき技術の高さを見ることができる。

 
녹유 네 발 항아리
사나게 요 1점
도기 높이 18.8, 구연부 지름 8.8, 몸통 지름 22.9 헤이안시대, 9세기 규슈국립박물관

녹약緑薬은 그것이 녹는 온도에 따라 900도 이하 저화도유低火度釉와 1200도 이상 고화도유高火度釉로 나뉜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만든 시유도기施釉陶器는 납을 원료로 하는 저화도유를 사용했다. 나라삼채奈良三彩가 대표적이지만이보다 이른 7세기 후반에는 이미 이 기술이 일본에 전해진 상태였다. 나라 지역 천원사川原寺 녹유벽돌緑釉塼[녹유벽돌]과 쓰가마와리 고분塚廻古墳의 녹유 관대緑釉棺臺가 가장 빠른 예로 여겨진다.

나라시대 일본에 당삼채唐三彩가 전해진 영향으로 일본에서도 삼채三菜 도기가 제작됐다. 녹색·갈색·흰색 세 가지 색이었지만 점차 녹색과 흰색 두 가지 색, 혹은 녹채 만으로 제작됐다. 헤이안平安 시대에는 다채多彩 도기는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으며, 녹유綠釉만 중국 월주요越州窯 청자를 모방한 제품으로 쓰였다.

이 녹유 네 발 항아리는 중국 월주요 청자를 모델로 삼아 제작했다. 하지만 모델이 된 작품이 소형 네 발 항아리였던 데 견주어 사나게요猿投窯[원투요]에서는 항아리를 크게 해서 만들었다.

당삼채 모방품인 나라삼채 항아리가 당나라의 그것과 달리 나라시대 스에키 항아리須恵器壺에서 볼 수 있는 강인한 조형성을 보이는 데 비해, 사나게요 녹유 네발 항아리는 당삼채 항아리를 연상케 하는 느슨한 조형을 보인다.

몸통에는 가로로 돌기띠 세 단을 붙였고, 이를 직각으로 교차하는 형태의 네 줄 돌기띠를 붙여 그 끝부분은 짐승 모양 발로 이었다.

이런 녹유 항아리는 화장한 뼈를 묻는 용도로 쓴 사례가 알려졌으며, 이 네 발 항아리 또한 동일한 용도였다고 추측한다.

백색 바탕흙에 녹유가 선명하면서 발색이 아름다워 사나게요 녹유가 극성에 이른 수준을 보여준다. (저 사이트는 한국어 서비스도 하지만, 문장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적지 아니해서 내가 이참에 교정했음을 밝힌다.) 

 
2 . 원투호猿投窯, 사나게요さなげよう란? 
 

Sanage Kiln - Wikipedia

en.m.wikipedia.org

 
이참에 그 일본어판 사전 전문을 번역한다. 
 
원투요猿投窯[さなげよう, 사나게요]란 愛知県 나고야시名古屋市 동부에서부터 豊田市 서부, 瀬戸市 남부까지 大府市 및 刈谷市 북부에 걸치는 약 20평방킬로미터에 집중하는 1천기를 넘는 가마터를 총징하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삼대 가마터 중 하나로 꼽힌다. 원투산요猿投山窯, 혹은 원투산 서남록 가마터 무리[猿投山西南麓窯跡(址)群라고도 한다. 

 

灰釉大壺 平安時代 9世紀 東京国立博物館蔵

 
개요
고분시대古墳時代 후기부터 가마투라시대鎌倉時代 초기까지 700년 남짓한 긴 기간에 걸쳐 계속 영업했으며 그 문화 사회적 배경 또한 복잡하고 유동적이라 그 전체 모습을 하나로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크게 "고분 후기-나라奈良 중기中期·스에키須恵器의 시대" "나라 중기-헤이안平安 중기·회유도기灰釉陶器의 시대" "헤이안 중·후기-가마쿠라 초기·산다완山茶碗의 시대"라는 세 가지 시대 구분이 가능하다. 

기원
나고야시名古屋市 열전신궁熱田神宮에 인접해 5세기 후기 계체천왕継体天皇한테 딸 목자희目子姫[めのこひめ, 메노코히메]를 시집보낸 대호족大豪族 미장련초향尾張連草香[おわりむらじくさか, 오와리무라지쿠사카] 무덤이라고 간주되는 동해東海지방 최대 전방후원분前方後円墳인 단부산고분断夫山古墳(전체길이 151m)이  있다. 이 무덤을 장식한 스에須恵 바탕의 식륜埴輪[하니와]가 名古屋市 동부 동산東山 111호 가마에서 구웠음이 밝혀져 고고학에서는 원투고요猿投古窯의 기원이 되었다. 

발견 경위 
1957년9昭和 32) 목증천木曽川 중류 유역에서부터 물을 끌어들여 미장尾張 언덕을 뚫어 지다知多 반도에 이르는 愛知 용수用水라는 대규모 공사가 개시됐다.

기업가이면서 옛 도자 연구가인 본다정웅本多静雄이 공사에 따라 그 공사구간을 따라 포진한 가마터가 파괴될 것을 우려해 그에서 반입되는 출토품을 사 모았다.

개중에 인공 유약을 입힌 것으로 생각되는 도자기 파편이 있음을 알게 된 그는 국가를 압박함으로써 곧 나고야대학 고고학교실이 중심이 되는 대규모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그동안 세토瀬戸·미노美濃 지역 중세 가마가 발생한 회유 도자灰釉陶器 가마가 속속 모습을 드러내면서 공백이었던 나라-헤이안시대 도자사가 한꺼번에 드러나는 대발견이 되었다. 
 

緑釉手付瓶 平安時代 10世紀 東京国立博物館蔵



명칭의 유래 
本多를 비롯해 조사 중심을 이룬 나고야대학名古屋大学 교수 정전정일澄田正一과 조교수 楢崎彰一 등은 구로자사黒笹 가마터에 서서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맘이?) 안 좋다"는 얘기가 있었고, 징전澄田이 "아직 나중에 발견될지도 모르니 넓은 이름이 좋을 것이다. 여기서 보면 원투산猿投山 정상이 보인다. 거기에서 서쪽 방향과 남쪽 방향, 원투산猿投山 서남록西南麓 고요지군古窯址群이라고 하면 어떤가?" 하고 제안이 있어 이를 줄여서 "원투고요猿投古窯"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이후 발굴조사에 따라 가마터는 분포가 미장尾張 동부에서 서삼하西三河 서부임이 판명되어 멀리 떨어진 원투산 기슭 주변의 중세 세토瀬戸 계통 가마와 가마와 혼동되기 쉬워 혼란스러운 결과를 낳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특징
현지 원료를 이용해 조선반도에서 5세기 후반에 전해진 스에키須恵器 기술로써 대륙에서 박재舶載되는 아름다운 청자의 국산화를 기획함으로써 당시 문화·정보·기술의 정수를 결집한 하이테크 가마로, 청자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일본 최초의 고화도高火度 시유도기施釉陶器와 원투백자猿投白瓷[さなげしらし, 회유도기灰釉陶器]를 산출한 점을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다.

생산품목
주된 생산품은 제기祭器·불구仏具·香炉·各種硯·飲食器 등의 고급품에 한정되어 평안경平城京을 비롯해 사사寺社·관아官衙·호족豪族 등의 지배계층에 공급했다. 원투요는 관요官窯 또는 관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관요 성격의 가마였다고 생각된다. 

脚注
^ 文化財ナビ愛知「黒笹七号窯」 愛知県公式HP
^ 瀬戸窯業前史瀬戸市公式HP
参考文献
本多静雄「愛陶百寿」里文出版
大石訓義「猿投古窯 - 日本陶磁の源流」雄山閣 
 
3. Four-Legged jar 猿投窯 緑釉四足壺


Four-Legged jar | Japan | Heian period (794–1185)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Use your arrow keys to navigate the tabs below, and your tab key to choose an item Southampton. Parrish Art Museum. "Japanese Ceramics: From Prehistoric Times to the Presnet," August 5, 1978–September 24, 1978. New York.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www.metmuseum.org

 
Title: Four-Legged jar
Period: Heian period (794–1185)
Date: 9th century
Culture: Japan

Medium: Stoneware with green glaze and relief decoration (Sanage ware)
Dimensions: H. 7 5/16 in. (18.6 cm); Diam. 8 3/4 in. (22.2 cm)
Classification: Ceramics

Credit Line: The Harry G. C. Packard Collection of Asian Art, Gift of Harry G. C. Packard, and Purchase, Fletcher, Rogers, Harris Brisbane Dick, and Louis V. Bell Funds, Joseph Pulitzer Bequest, and The Annenberg Fund Inc. Gift, 1975 

Accession Number: 1975.268.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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