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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 이하응이 국정에 관여하며 경복궁을 중검하고 종친보를 만들었다.
부유한 사람과 상민은 특별한 공로나 글재주가 없어도 손쉽게 관작을 받았다.
반면 가난한 사람과 대대로 양반으로 지내온 사람은 많은 책을 읽거나 활쏘기를 잘 하는 사람이라도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였다.
동요에 "새로운 양반이 득세하고 전통있는 집안은 관직을 잃는다"라고 하였다.
당시 본관이 전주이고 성이 이씨인 사람은
비록 종의 신분이거나 역졸에 불과한 사람도 모두 양반이라며 사족들을 함부로 대하였다.
아 통탄할 일이다.
1861년, 그 자신도 그다지 영달하지 못했던 듯 한 집안출신인
최진익이 쓴 일기의 내용이다.
*** [편집자주] ***
세상이 뒤집히는 증언으로 이토록 절절한 게 있을까?
저 경복궁 중건은 조선사회 모든 것을 흔들어버렸다.
당백전 발행으로 대표하는 화폐 경제 붕괴를 이야기하나, 조선은 그 이전 화폐 경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망각하면 그 의미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 이전 상평통보 이야기를 하나, 그 유통은 지극히 제한적이었으며, 경복궁 중건이야말로 한국사회가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로 돌입하게 했으니, 마구잡이로 찍어냈건말건 처음으로 한국사회는 화폐 경제로 뛰어들었다.
단순히 신분제 붕괴로 끝난 것이 아니라 경제 체제 근간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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