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촌중인라는 개념이 있다.
학계 문외한인 필자가 볼 때 이 개념이 어느 정도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 이 향촌중이라는 개념은 호적의 구조를 파악하는데 매우 유용하다는 생각이다.
일반적으로 중인이라하면, 역관, 의원, 향리 등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 이들을 지칭한다고 알지만,
향촌중인이라고 부르면 이 사람들은 정체성에 있어 그 고을의 양반과 다른 사람들이 아니다.
다시 말해 양반 행세를 하며 본인 스스로도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우리는 양반"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 양반 직역을 받는 사람들 중에 두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수백 노비를 거느리고 안정적으로 유학 이상의 직역 혹은 현직을 받는 집안,
또 하나는 노비의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고, 호적상 직역이 계속 흔들려 유학을 받을 때도 있지만 그보다 아래 직역으로 떨어지기도 하며,
균역법 시행초기처럼 엄중한 시점이 되면 심지어는 선무군관으로 떨어지도 하는 이런 사람들,
이 사람들이 바로 향촌 중인이다.
따라서 향촌 중인은 호적으로만 보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데,
한 해의 호적이 아니라 여러 해의 호적을 시계열 자료로 삼아 대대로 그 집안을 추적해 내려가면
비로소 이 집안이 향촌 중인이라는 것이 분명해 진다.
이 향촌 중인 상당수가 바로 조선시대 문헌에 흔히 나오는,
"과거도 안보면서 놀고 먹는 놈들"이라고 지칭되는 이들이다.
제대로 된 양반의 눈에서 볼 때는 양반 같지도 않는 놈들이 양반 흉내를 내며 군역을 빠진다는 뜻으로,
실제로 이 사람들의 호적을 보면 이들은 양반 직역을 받고 있어서 한 해의 호적만 들여다 봐서는 이들이 소위 "향촌중인"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말이다.
19세기 후반이 되어 조선왕조의 해체기가 되면,
이 향촌중인들은 죄다 "양반 후손"을 자칭했을 것이 틀림없다.
이들은 모칭유학처럼 평민에서 상승한 사람들도 아니고,
호적상 분명히 양반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지도 않으며
아마도 조상 중 누군가가 서얼이어서 향촌중인으로 떨어진 것이 틀림없는 사람들이라,
이 사람들은 대부분 구한말에는 "우리는 대대로 양반"이라고 외치며 격변기를 맞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구한말 이후 득세한 많은 집안이 바로
이러한 "향촌중인" 후손이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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