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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이, 절이 충忠을 표방하면
첫째 절이 아니며
둘째 중이 아니다.
출가는 충과 효를 뛰어넘는 일이다.
한국불교 역설은 불교 스스로가 불교를 버렸다는 데 있다.
충과 효는 세속을 옥죄는 양대 족쇄라 출가는 그것을 끊어버림을 말한다.
더 문제는 그것을 포장한 불교사.
한국불교를 호국불교로 만들고
그리하여 중들이 죽창 들고 일어나 임금과 왕실과 국가를 위해 봉헌한 일을 대서특필하며 그것으로써 세속을 향해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나아가 보상을 요구하니 이것이 어찌 불교리오?
중은 중다워야 하고 절은 절다워야 한다.
임금을 향한 충을 드러내고 표상한다는 뜻을 품은 표충사는 가장 반불교적 이름이다.
임금이 아닌 대중을 갖다놓아야 한다.
사명당이 구제한 이는 임금이 아닌 고통받는 사부대중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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