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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월정교 복원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논란이 있었는지 모른다.
다 날아가 버리고 교각 아래만 겨우 남은 데다 그 모습을 추론할만한 문헌도, 그림자료도 전연 없었다.
결국 중국과 일본 자료로 보완해 그걸 바탕으로 그려낼 수밖에 없었으니 이 과정에서 그 괴물 같은 원형이란 망령이 어김없이 나타났으니
꼭 그렇다고만 할 수 없으나 대체로 건축 쪽에서는 하자! 흐름이었고 입만 열면 원형 타령인 고고학도들은 길길이 반대했으니
암튼 논란 끝에 하기로 확정 공포되고 기초공사에 들어갔다.
이때 고고학주의자로 국립박물관장 출신인 이건무가 문화재청장이 되면서 상황이 일변했으니 이건무는 이를 끌어엎고 없던 일로 하고자 자신이 가진 권한을 최대한 행사하려 했다.
하지만 이건무는 결국 꺾이고 말았다. 이미 배가 떠난지 한참이었고 무엇보다 이를 밀어부친 경주시 쪽에서 반발이 극심했다.
이 건에서 나는 철저히 중립을 지켰다.
어느 한쪽을 편들었다면 당시 내 성정상 그쪽으로 결단냈을 것이다.
다만 당시 내가 입에 누누이 올린 말이 있다.
원형 훼손이고 나발이고 중국 다리고 나발이고 막상 들어서면 명물이 될 것이다. 라고 말이다.
뭔형? 웃기는 소리마라.
대중이 버렸다.
경주 최고의 명물로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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