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인가 89년인가 최몽룡 권오영 이름으로 풍납토성 논문 한 편이 나왔다. 요점은 풍납은 왕성이 될수 없단 거였다. 이유는 걸핏하면 홍수가 나는 데다가 왕성을 건설할 순 없단 거였다.
나는 이 논리를 납득할 수 없었다. 풍납이 왕성이건 아니건 백제시대에 무수한 사람들이 살았다. 졸저에서 이리 말했다.
왕성이 아니라고 하자. 왕성 아닌 도시라 해서 그걸 미쳤다고 강가에 건설하는가? 왕성이냐 아니냐가 문제는 아니다. 그건 부차적이다.
한데 이 논문이 이후 주구장창 인용됐다. 이 논문은 나중에 권선생한테 들으니 권선생이 거의 다 썼다.
요샌 틈만 나면 권선생은 내가 잘못 봤다는 고백을 한다. 자설을 폐기했음을 고백하는 사람 난 거의 보질 못했다.
(2017. 11. 26)
***
The Han River, which runs from the east to the west through the center of the Korean Peninsula, also passes through Seoul.
Pungnaptoseong Fortress is located on the southern bank of the Han River, at the point that passes through Seoul.
There was an opinion that Pungnaptoseong could be the place where the royal castle of the Hanseong Baekje period was not known until a while ago.
This is because, above all, the size of the fortress is very large, and relics and remains from the Hanseong Baekje period were poured out.
However, the opinon was soon buried, above all, it was because Pungnaptoseong was located along the Han River.
Simply put, it was because the Baekje people couldn't build a royal castle in such a place where floods would hit them.
But I have always questioned such claims. Regardless of whether Pungnaptoseong is a royal castle or not, no one can deny that countless people lived there for a long time during the Hanseong Baekje period.
In the end, my suspicion was proved to be true by actively excavating and researching Pungnaptoseong since the 1990s.
문제의 논문은 최몽룡·권오영,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본 백제초기의 영역 고찰>(《천관우선생환력기념한국사학논총》, 정음문화사, 198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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