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피란 놈은 어찌하여 나락논은 그리도 잘 찾아다니는지, 씨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저 놈들은 가만히 놔 두면 온통 나락논이 피밭이라
저 놈들은 얼마나 생명이 질긴가 하면 저 놈들을 일일이 뽑아 논두렁에 던져놔도 죽지도 않는다.
참말로 질긴 생명을 자랑한다. 저 피는 나락 농사를 망치는 주범이기에 일일이 때마다 뽑아줘야 한다. 그 고역이 보통이 아니다.
흔히 피죽도 못 먹은 얼굴이라 하는데, 그 피죽 재료가 바로 저 피다.
모르는 놈들이 피죽 피죽 해서 대단히 여기지만 저 피, 먹을 거 진짜로 없다.
가을 나락이 익을 철에 같이 익는데, 저걸 훑으면 좌르르 떨어진다. 그런 까닭에 탈곡이 벼보다는 천만배 쉽다.
손으로 훑으면 그만이기에
그에 견주어 나락은 지랄 맞다. 알도 저에 비해서는 열라 굵고 단단한 데다가 얼마나 질기에 줄기에 달려 있는가 하면 그냥 후려쳐서도 안 되고 그 빠를 탈곡기로 돌려야 한다.
그 탈곡기로 돌렸는데도 껍데기는 그대로 남아 있어 이걸 쌀밥을 해 먹으려면 또 다른 과정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도정이다. 정미소 말이다. 방앗간 말이다.
짚으로 엮은 그 가마니째 나락을 싣고 가서 정미소 가서 돌려야 비로소 쌀알이 나온다.
그 도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나락 껍데기들은 그대로 논밭에 뿌려 거름으로 쓰기도 하나, 이건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고, 그렇게 뿌려본들 하도 단단하고 질겨서 썩지도 않는다.
저걸 거름이 쓰기 위해서는 별도 공정이 필요한데, 똥바가기 뒤집어 씌어서 그 메탄 냄새로 썩게 하거나 혹은 아예 태워서 재를 쓴다.
도정하는 과정에서 저런 단단한 껍질 말고 작은 가루가 섞여 나오는데 이건 딩겨라 해서 거개 돼지를 주거나 쇠죽에 넣어 끓여 주면 돼지 소가 아주아주 좋아해서 그 먹는 모습을 보면 침이 나온다.
미안, 피 얘기하다 엉뚱한 데로 흐르고 말았다.
저 피 말이다. 피죽을 끓여먹는다 하는데, 또 실제 일부 지방에서는 저 피죽을 먹었다는 사람을 본 적 있는데 저건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실상 가축사료다.
이건 일전에 내가 함안 성산산성 신라 목간에서 저 피를 뜻하는 곡물 패稗라는 말이 하도 자주 보여 식량이 아니라 가축사료일 것이라 했거니와,
저건 정말로 내가 굶어죽기 직전 먹을 게 없을 때 할 수 없이 사약 마시는 기분으로 먹는 것이지 사람이 먹어 지탱할 그런 곡물이 아니다.
아 물론 신라시대 피가 지금의 저것과 종류가 조금 다른, 예컨대 조 수수 기장 비슷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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