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아봐도 내가 무엇인가 악다물고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해서 그런 대로 결실이라도 보게 된 힘은 근간이 분노다.
다른 분들이야 내가 섣불리 예단하기 어려우니 제껴두고, 내 경우 책을 두고 말해 본다.
첫 책 풍납토성 오백년 백제를 깨우다는 분노가 출발이었다.
그런 까닭에 훗날 혹은 지금 쳐다 보니 성긴 곳 천지지만, 나는 첫째 그때까지만 해도 맹렬 문화재 투사라, 나 아니면 문화재가 다 없어진다 절박했고,
나아가 그 과정에서 입으로만 문화재 보존을 떠드는 이쪽 업계 사람들이 실로 증오스러워 그들을 고발하는 심정을 썼다.
그 이듬해 2001년에 나온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 역시 분노의 자식인데, 그 즈음 나는 역사학계, 특히 고대사학계와 전면전을 불사하는 전투를 벌였으니, 이 책은 그 불사하는 쟁투의 증언이다.
그로부터 15년 간 나는 후속 작업이 없이 논문만 썼다. 그러다가 내가 왜 이러나? 하고, 나아가 나는 논문 무용론에 빠졌으니, 이때가 실은 나로서는 가장 평온한 시기이기도 했으니,
저 두 책으로 구축한 이스태블리시먼트에 내 스스로 안착한 시대였으니, 창의성은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그 침묵 끝에 다시 들고 나온 것이 직설 무령왕릉이었으니, 이건 분노와 자부 그 양다리 걸치기였다.
본래 이 원고는 앞선 두 책을 낼 무렵 이미 초교 재교까지 한 마당에 출판을 기다리다가 지금은 말하기 힘든 어떤 아주 단순한 사연으로 뒤로 미룬 것이 16년이나 지나서야 나오게 되었으니
그때 나는 막 해고되어 그 해고에 대한 분노에서 저 원고를 다시 끄집어 내어 몇 달만에 선보였고, 나아가 그간 무수한 무령왕릉과 관련 연구가 있었지마는
내가 아니면 누구도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이제는 정리할 때가 되었다 해서 낸 것이다.
이후 다른 단행본 두어 종은 기관 의뢰로 돈 받고 쓴 것이라, 내 창작 목록에서는 뺀다.
난 돈 받고 낸 것은 순수한 내 창작물이 아니라고 본다.
나아가 아직 난 그 짓은 안 했지마는 논문집 엮어서는 단행본 운운하는 일 난 책으로 치지도 않는다.
저 분노가 살아가는 힘이라는 예화로써 우리는 매양 사마천의 발분發憤을 들거니와, 이 발분이 곧 분노다.
사마천은 그 불후한 사기史記를 궁형이라는 치욕 중의 치욕적인 억울한 형벌을 받고서는 썼다고 스스로 고백했다.
저 발분이야말로 나는 언제나 경외하거니와, 물론 내가 말한 내 경험에서 비롯한 성과라 할 만한 것들이 저 정도 발문에 해당하느냐 하면 그 언저리도 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 엇비슷은 하다고 해 둔다.
그에 대비해 절망은 답이 없다. 분노와 절망은 다르다.
절망은 넋두리이며 자포자기며 무기력이다.
나 역시 그에 빠졌던 적이 왜 없겠으며 또 앞으로도 얼마든 그럴 일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저 절망과의 싸움에서 끊임없이 대들려고는 한 듯하다.
분노할 것인가 절망할 것인가?
분노하라 절규하라 그리고 창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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