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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중요한 것은 ‘국가유산’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 실질이다

by taeshik.kim 2024.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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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국가유산’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 실질이다  

김태식 


새로운 변화에는 언제나 혼란이 따르기 마련이라, 2024년 5월 17일, 목전으로 다가온 정부가 시도하는 국가유산기본법 시행 또한 그에서 하등 예외일 수는 없다.

그에 관련하는 지자체라든가 관련 단체들을 중심으로 이를 둔 설왕설래가 오간다.

주무부처인 문화재청은 이 새로운 법 체계 도입이 우리가 아는 문화재 체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유도할 것이라며 1년째 요란스럽게 선전 홍보활동을 한다. 왜 이 새로운 체계를 도입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우선 문화재청 목소리를 귀 담지 않을 수 없는데, 그 도입 배경으로 그들은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래 60여 년 간 유지해 온 문화재 정책의 한계를 극복하고, 변화된 정책환경과 유네스코 국제기준에 부합하도록 정책방향을 전환하여 국민에게 편익을 주는 국가유산의 새로운 역할과 가치를 정립하고자 함”을 표방한다.
 

이번 개편안 핵심이 이것이다. 보다시피 유네스코 기준을 따랐으니 국제적이라 홍보한다. 하지만 무엇이 국제적인가?

 
그렇다면 과연 그들이 추진하고자 하는 새로운 법 체계가 과연 이런 배경을 제대로 담았으며, 그 구체적인 실천방안들은 그에 부합하는가 하는 점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국가유산기본법과 그에 따른 새로운 관련 법령 정비는 기존에 통용하는 문화재 범주와 그에 대한 새로운 분류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의미 평가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기존 문화재 분류 체계를 유형문화재·무형문화재·기념물·민속문화재 네 범주를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그리고 무형문화유산 세 가지로 재편했다.

일본 문화재보호법을 그대로 빌려다 쓴 기존 문화재 분류 체계가 얼마나 많은 모순을 장착했는지는 새삼 지적이 필요 없거니와,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상충이 문제였다.

이를 국가유산기본법은 저와 같은 세 가지로 재편을 시도한다. 이것이 기존 분류 체계에 견주어 훨씬 합리적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새로운 분류가 아주 문제가 없는가?

무엇보다 무형문화유산 항목을 따로 설정한 대목은 문제가 될 대목이라, 이것이 유네스코에서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으로 대별한 세계유산 등재 시스템과는 별도로 독립 분파한 이른바 인류무형유산제도를 응용했음이 분명하다.

유네스코가 말하는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은 우리네 유형과 무형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분명히 유형유산 관점에 그것만을 등재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를 보강하고자 그 세계유산 시스템이 커버하지 못하는 새로운 문화유산 소재로 무형유산을 별도 항목으로 독립했다.

물론 세계유산이라 해도 이른바 인류보편적 가치(OUV)라 해서, 그 핵심가치는 무형에 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로 이 점에서 무형유산을 등재 대상으로 삼는 인류무형유산은 엄연히 세계유산 양대 분파인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중에서도 당연히 문화유산에 속하는 것이다. 이 모순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한 유네스코는 인류무형유산이라는 별도 등재 시스템을 어정쩡하게 만들어 운영 중인 것이다. 

한데 이 모순을 국가유산기본법은 그대로 가져왔다. 더 간단히 말해서 국가유산기본법이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에 더불어 삼두마차로 내세운 무형유산은 실상 문화유산의 일부다. 그 일부를 별도 항목으로 내세운 점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간단히 말해 기왕 유산을 분류할 것이라면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두 가지로 충분했고 그것이 한층 명료했을 테지만, 거기다가 그 부분 집합인 무형유산을 독립한 일은 흠이다. 

다음으로 국가유산기본법은 문화재라는 명칭 혹은 개념 자체를 ‘국가유산’으로 치환한다. 이 국가유산이라는 말은 그 법률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마뜩한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그렇게 갔다.

기존 문화재보호법과 비교할 때 국가유산기본법은 문화재라는 용어를 그대로 ‘국가유산’이라는 말로 대체했다. 이에서 바로 문제가 돌발한다.

문화재라는 말은 국가유산이라는 말과 등치할 수 없다.
 

빈깡통이 요란한 법이다. 굉장히 요란했다.



본래 이 법률 제정을 추진할 때 염두에 둔 문화재 대체 용어의 원천 소재는 heritage였다. 왜인가? 이것이 바로 국가유산기본법을 제정하는 근간의 이유였는데, 문화재文化財라는 말은 결코 자연유산을 포함할 수 없는 까닭이었다.

문화재는 문화에 의한 소산이라는 뜻이며, 문화文化는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니, 자연유산이 문화재에 포함될 수 없는 모순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 모순을 어찌 해결할 것인가? 

물론 자연과 인간을 분리할 수 있는가 하는 근간의 문제가 대두하지만, 이 점은 여기서는 논외로 치고 외국을 보면 우리랑 비슷한 처지를 공유한 일본을 제외하고서는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은 대체로 구별하며, 이웃 중국의 경우에는 문물文物이라는 훨씬 좋은 대체제가 있다.

유네스코를 보면 무형유산을 별도로 독립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말하는 문화재는 간단해서 그것이 생성된 내력에 인간이 개입했느냐 아니했느냐에 따라서 문화유산 cultural heritage와 자연유산 natural heritage 두 가지로 분류할 뿐이다.

중국에서 쓰는 문물文物이라는 말은 文과 物의 합성어라, 文이 바로 인문人文이라 해서 인간 활동이 남긴 흔적을 말하며, 物이 바로 자연유산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용어 개발에 실패하고선 계속 문화재라는 용어를 자연유산까지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했던 것이다. 

국가유산기본법이 말하는 국가유산은 곧 heritage에 대한 대응어로 문화재청이 내세운 것이다. 그 고민의 일단을 풀어봤다는 점에서 의미가 나름 크다. 하지만 문제 여전한데 무엇보다  ‘국가’라는 말 때문이다.

이 국가라는 말이 지니는 묘한 색채는 차치하고, 문화재라는 말을 국가유산으로 대체하니, 당장 국가유산이 아닌 것들, 예컨대 명백히 지역적인 색채가 훨씬 강한 것들은 어찌해야 하는가가 문제로 대두한다.

물론 이조차 국가유산기본법은 국가유산이라는 범주로 포섭하려 한다. 문화재의 대체 용어로는 유산遺産이 있을 뿐이지 그것을 국가유산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유산이라는 말이 아직 일상생활 보편어로 정착되지 않았고, 또 무엇보다 한자나 영어를 병기하지 아니하면 다른 뜻도 함유하는 문제점이 있다.

그런 까닭에 굳이 국가라는 말을 붙인 고육지책이 있었다고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유산에다가 굳이 국가라는 말을 붙임으로써 너무나 많은 곡해를 부르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유네스코가 대표하는 국제기준에 따라 문화재를 재편하려 했다면, 차라리 그 절대 기반이 된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 협약(Convention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the World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에 맞추어 ‘문화자연유산’이라 해야 했으며, 그에 따라 문화재청 새로운 간판 또한 국가유산청이 아니라 ‘문화자연유산청’이라 하는 편이 좋았다.

물론 이 경우 문화유산·자연유산 청‘이라는 합성어가 당장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단점이 있기는 하겠지만, 용어라고 하는 것은 쓰기 나름이라 그것이 정착하는 데 필요한 것은 시간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말한 대목은 어쩌면 피상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바뀐들, 문화재보호법이 국가유산기본법으로 바뀐들 무슨 상관이랴? 그 명칭이 뭐가 됐던 더 중요한 것은 형식의 변화에 동반하는 실질의 변화다.
 

이번 개편이 저와 같은 근간하는 혁명 혹은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 문화재청은 선전했다. 그런가? 개사기다.

 
문화재청 역시 단순히 그 법률을 바꾸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국가유산(=문화재)’ 도입이 문화재를 향한 근간의 인식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러한가? 

문화재청은 이 법률 제정을 추진하고 그 시행을 앞둔 지난 1년간, 줄기차게 그 변화의 정당성을 홍보하며 무엇이 어떻게 변하게 되는지를 주입하려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를 두고 설왕설래한다.

무엇보다 실제 그 업무를 일선에서 수행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와 관련 기관들에서는 우왕좌왕이다. 그 반응은 물론 천차만별이지만, 다들 묻는다. 뭐가 바뀐다는 것인가? 
문화재라는 말을 국가유산으로 바꾸는 것 말고 뭐가 실질에서 바뀐다는 것인가를 물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문화재 관련 기관들에 대해서는 특히 문화재 발굴조사를 담당하는 기관들에 대해서는 문화재라는 간판을 떼어버리고 국가유산으로 바꾸라는 권고문이 하달되었는데, 그 권고문에 이들 기관에서는 곤혹스럽기만 하다.

예컨대 무슨 문화재연구원이라는 간판을 하루아침에 국가유산유산연구원 같은 것으로 바꾸라니? 국립도 아닌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난리다. 그러니 다들 문화재라는 기관에서 슬쩍 바꾼 문화유산연구원이라는 간판을 내걸기로 한 모양이다.

한데 국가유산기본법이 탑재한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이에서도 돌발하기 시작했다. 저들 기관만 해도 주로 고고학 발굴조사를 담당하지만, 문제는 문화유산 사업만 하는 게 아닌 까닭이다. 

지자체는 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데, 문화재라는 말을 ‘국가유산’이라는 말로 교체하는 바람에 더 처지가 묘해진 것이다.

당장 문화재 관련 전담 부서만 해도 문화재과는 국가유산과로, 문화재계는 국가유산계로 바꿔야 하는 문제가 돌발한 것이다.

그래서 편한 대로 우선은 문화유산이라는 말을 선호해서 문화유산과, 문화유산계로 바꾸기로 한 모양인데, 그에 따른 문제가 적지 않다. 문화유산이라 하면서 자연유산 업무도 수행해야 하는 이율배반이 수반하는 것이다.

천연기념물 관련 업무가 대표적이라, 문화유산과 문화유산계라면 자연유산 업무는 배제해야 하는 것이 맞다. 

나아가 국가유산이라는 말이 주는 위압감, 혹은 차별심리도 문제다. 앞서 본 대로 국가유산이라는 말은 기존 ‘문화재’라는 말을 대체한 용어다. 하지만 이것이 지역으로 내려갈 때는 심각한 문제를 유발한다.

기존 국보니 보물이니 사적이니 하는 것들이야 국가지정 문화재라 해서 국가유산이라는 말을 쓰는 데 상대적인 위화감이 덜하겠지만, 그렇다 해도 이 경우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 국가유산이기 이전에 지역에서 저들은 지역문화재다.

물론 국가유산기본법과 관련 법률에서는 향토유산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으로 알지만, 이 향토유산은 말 그 자체로 국가유산을 대립하는 개념이다.
이런 모순에 봉착한 일부 지자체에서는 ‘지역유산’이라는 개념 혹은 제도를 도입했다는 소식도 벌써 들리는데, 이는 국가유산이 함유한 문제점을 드러내 준다. 

하지만 국가유산기본법과 관련 법률 정비에 따른 새로운 유산 제도 시행이 초래하는 가장 큰 논란은 과연 이를 통해 실질로 유산이 어떻게 변하느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

다들 묻는다. 그래 국가유산기본법이라 하는데, 그래서 우리가 아는 그 문화재가 이런 새로운 법률 시행으로 무엇이 달라지는가? 이런 물음에서 많은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새로운 국가유산에 무슨 국민을 위한 미래가치가 있단 말인가? 요란한 이벤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국민 사기극이었다.

 
물론 새로운 제도는 아직 시행도 되지 않았고, 앞서 말했듯이 그 새로운 제도 시행에 따른 초기 혼란은 사회 어느 부문이나 불가피한 사정이 있으니, 그런 점은 감안하고 일단은 기다려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에 동반하는 새로운 국가유산 정책 혹은 그 방향이라 내세운 것들을 보면 저런 의구심들을 그냥 흘려버릴 수만은 없다. 

국가유산청으로 바뀌게 될 문화재청은 각종 화려한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다. 한데 그 어느 것에서도 진짜 바뀌는구나 하면서 무릎을 치게 만드는 대목이 부족하다. 그래서 유산의 무엇이 달라진다는 것인지 체감할 대목이 쉬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문화재가 국가유산이 되면, 그래서 이젠 국가유산으로 떼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인지? 그것이 진짜 국가 성장 동력이 된다는 것인지, 그렇다고 말은 하는데, 그런 방향 혹은 싹수가 쉽게 보이지는 않는다.

유형유산도 기존 원형 존치 개념을 버리고 가치 전승 개념으로 보존을 바꾼다 하는데, 과연 바뀔까? 지금 이 순간에도 틈만 나면 원형 고수를 이유로 문화재 주변 각종 개발 압력을 억누르는데, 과연 국가유산기본법은 문화재 개발 촉진법인가 아니면 개발 억제법인가? 이조차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언제나 문화재는 개발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을 못하게 해서 망한다고 보는 사람이다. 

이런 숙제, 진짜 숙제가 우리한테는 남은 것이다.

 
***

 
국가유산수리협회 기관지 《문화유산 담》 VOL.7[2024 봄호] 기고문이다. 

첨부 사진과 그 해당 문구는 잡지 원문에는 없으며, 그것을 전재하며 내가 덧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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