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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 漢文&漢文法

하늘 끝이 보고파 : 왕지환(王之渙)의 등관작루(登鸛鵲樓)

by taeshik.kim 2018.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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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작루(鸛鵲樓)에 올라[登鸛鵲樓·등관작루] 


[唐] 왕지환(王之渙·688~742)

 

白日依山盡 밝은 해 산에 기대어 저물고

黃河入海流  황하는 바다로 흘러들어가네

欲窮千里目  천리 끝 다 보고파

更上一層樓  다시금 누대 한층 더 오르네


오언절구(五言絶句)다.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를 필두로 하는 각종 당시선집唐詩選集에 빠지지 않는 절창이다. 


관작루(鸛鵲樓)는 '鸛雀樓'라고도 쓴다. ‘鸛雀’ 혹은 ‘鸛鵲’이란 황새를 말한다. 긴 목과 붉은 부리, 흰 몸과 검은 꼬리 깃이 있다. 일명 부부(負釜), 혹은 흑고(黑尻), 혹은 배조(背竈), 혹은 조군(皁君)이라고도 한다. 관작루란 누각 이름으로, 산서山西의 포주부(浦州府. 지금의 영제현永濟縣) 서남쪽에 있었으니 그 위에 관작이 서식했으므로 이런 이름을 얻었다. 황하가 범람함에 따라 지금은 그 터만 남았다. 이 관작루에 대해서는 北宋 시대 심괄(沈括)의 《몽계필담夢溪筆談》 卷25 예문藝文2에 다음과 같은 증언이 남아있다. 

 

하중부(河中府)의 관작루(鸛雀樓)는 3층이다. 앞에는 중조산(中條山)을 바라보고 아래로는 대하(大河·황하를 말함)를 굽어본다. 唐나라 사람들이 남겨 놓은 시가 많으나 다만 이익(李益)과 왕지환(王之渙)과 창당(暢當) 세 편이 그 정경을 형상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李益은 어찌 읊었는가? 


관작루 서쪽에 백척 돗대 섰고 

모래톱과 구름 걸친 나무 아득하네

한나라 피리소리 물결따라 흘러가고 

위나라 산하는 석양이 중턱에 걸렸네

천년 지나 여전히 빠른 세월 한스럽고 

서글픔 밀려오니 하루는 길기만 하네

바람과 연기 같이 돌아갈 곳 생각하는데 

멀리보니 봄이 아닌데도 절로 맘 아프네 

 

鸛雀樓西百尺牆

汀洲雲共樹茫茫

漢家簫鼓隨流水

魏國山河半夕陽

事去千年猶恨速

悉來一日卽知長

風煙並在思歸處

遠目非春亦自傷


이라 했으며, 창당暢諸은 이르기를 


멀리 나는 새 높이 올라 

저 높이 티끌 세상을 벗어났네 

하늘은 기세가 넗은 들 에두르고 

강물 흘러 끊어진 산으로 들어가네

 

迥臨飛鳥上

高出世塵間

天勢圍平野

河流入斷山

 

이라 했다.

 

왕지환(王之渙·688~742)이란 시인을 소개하면, 山西 太原人이며 일찍이 기주冀州 형수주부衡水主簿에 임명되었으나 훼방毀謗을 받아 사관辭官하고 鄉里로 퇴거했다. 在家하며 閑居하기를 15年, 後에 문안현위文安縣尉가 되었다. 강개慷慨하며 대략大略이 있었으며 倜儻에 異才가 있고 詩에 뛰어나 文名 역시 일세를 풍미했다. 천보天寶 연간에 고적高適·왕창령王昌齡·최국보崔國輔 등과 더불어 唱和하니 靳能撰(墓誌銘)이 그를 稱하기를 “嘗或歌從軍, 吟出塞, 噭兮極關山明月之思, 蕭兮得易水寒風之聲”이라 했다. 그 作品은 악공들이 특히 반겨서 그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즉각 聲律에 올려져 사람들이 다투어 전하며 노래로 불렀다. 애석하게도 그의 작품은 대부분 산일散佚하여 부전不傳하며 겨우 《전당시全唐詩》에 절구絕句 6首를 저록했을 뿐이요 五絕〈登鸛雀樓〉·七絕〈涼州詞〉는 모두 盛唐詩中 代表作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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