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지원병은 학병과 다르다.
학병은 전문학교 재학 이상의 사람들로
배울 만큼 배운, 조선땅에서는 당시 요즘으로 치면 흔하디 흔한 박사학위 소지자 보다 더 희귀한 사람들이었다.
당시 조선땅에 전문학교 이상 고학력자는 6000-7000명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람들이 바로 학병 대상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고학력 인텔리들이었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장교 재원으로 끌고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양반들 중 지원자가 있다 하여 친일 논쟁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내 생각에는 이 사람들은 장교 임관시켜 준다고 그 기회 잡겠다고 군대를 지원해 들어갈 그런 위치가 아니었다.
당시 전문학교 이상이란 정말 희귀하고 사회생활을 해도 소위 상당의 직급은 받아 생활 가능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학병은 거의 전부 강제 입대였다는 말이 옳다고 본다.
반면, "조선인 지원병"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학병과 다르다. 많은 사람이 학병과 조선인 지원병 부분을 착각한다.
이 조선인 지원병은 처음에는 소학교 졸업생을 뽑아 가려하다가, 너무 조선인 지원자가 없어 소학교 4년만 마치면 지원을 받았다.
학병보다 학력도 비교의 대상이 아닐 만큼 훨씬 낮다.
그렇게 끌고 간 사람들 중 앞에서 본 앞에서 보여드린 대본영 군령에 의하면,
일본말을 알아 듣는 사람들이 겨우 30프로 밖에 안되며 이 사람들이 군대 생활을 못견디고 달아났다는 것이다.
일본이 조선인 지원병 모집 때 소학교 4학년 이상이라는 제한을 둔 것은 최소한 읽고 쓰는 것은 해야 군생활을 한다는 생각에서 였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전술한 대본영 군령을 보면, 이들 조선인 지원병은 상당수가 문맹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소학교에서는 이미 일본어를 국어로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에 소학교 4학년을 마쳤다면 일본어를 못 알아 듣는다는것은 이해가 안 가기 때문이다.
군령에 보면 입대한 조선인들은 위생상태가 안좋고 사람들이 저열하고 어쩌고 하는 것으로 보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 틀림없다.
짐작컨대 지원병으로 입대한 상당수는 일본어만 못알아 듣는 것이 아니라 아마 사실상의 문맹이었을 것이다.
조선인 문맹자가 일본군에 들어갔다가 못버티고 도망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사실 불쌍한 사람들이다.
물론 개중에는 일본군에 들어가 어떻게라도 출세나 한번 해보자고 들어간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있는 집 자식들이 왜 지원병을 들어가겠나? 대부분이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로
지원병을 안했으면 다른 노동으로 벌어 먹었어야 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일제시대 말기에는 이미 소학교 졸업도 못하면 말단 노동자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따라서 대부분은 설사 지원을 했더라도 문맹자가 밥이나 먹어보자고 들어갔을 것 같고,
교육수준이 낮아 대본영 군령에 보듯이 일본군에 의해서도 천대를 받았던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먹고 살만했어야 그 사람들 선택에 책임을 지울수 있는 것인데,
당장 입에 풀칠도 못하고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던 사람들한테 무슨 책임을 어떻게 지울 수 있겠나?
남의 전쟁에 따라다니며 지원병을 한 것도 딱하지만 이들의 당시 경제사회적 수준을 보면 안타까운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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