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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농사는 일조량과 강수량, 평균 기온의 영향을 짙게 받는다.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의 벼농사는 검은 선처럼 전파되었을 것이다.
먼저 한반도에서 한번 남하하여 바다를 건너 일본큐슈로 들어간 후 동위도상으로 동진하다가 마지막에 북진하게 된다.
이 북진 단계가 되면 벼농사가 점점 일조량이 짧은 지역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므로 북진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일본 열도에서 벼농사 문명을 상징하는 야마토 왕권이 동일본일대를 조기에 석권하지 못한 이유다.
위도가 점점 올라가므로 벼농사가 북상을 쉽게 못한 것이다.
빨간선이 대략 서기 8-10세기 연간 한국과 일본의 북쪽 국경선이다.
양쪽 모두 비슷한 위도에서 국경이 형성됐음을 알 수 있다.
왜? 벼농사 기술의 한계상 이 위로 북상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란색은 대략 한국의 삼남지방 (충청, 전라, 경상) 에 해당하는 일본의 동위도를 표시한 것이다.
한국의 삼남지방과 비슷한 위도 이남의 영토가 일본이 훨씬 큰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쌀농사 생산성이 일본이 한반도보다 높을 수밖에 없었다.
동일한 볍씨 품종을 쓰게 되면 일본이 쌀농사 생산성이 높다는 말이다.
20세기 이전의 한국과 일본사의 전개는 이 지도 한 장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 Editor's Note ***
더 놀랍게도 저 북방한계선을 중국 본토로 그으면 만리장성과 거의 겹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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