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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때 다 타서 그렇다.
임진왜란 때 다 타서 그렇다.
아니다 일제시대 때 다 수탈당해서 그렇다 등등 여러가지 주장이 있지만
그게 아니고
원래부터 적었거나
그나마 있던 것 화재로 소실된 후 재건을 못해서 그렇다.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라 목재 건물이던 시대에는
화재로 다 태워먹는 건 늘상 있는 일이라
화재로 소실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얼마나 빨리 재건하느냐가 문제인데
우리의 경우 경복궁의 예에서도 보겠지만
한 번 타고 나면 중건을 아예 못하거나
해도 굉장히 어렵게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던 듯 하다.
왜 그럴까?
가난했기 때문이다.
이걸 복잡하게 생각하다 보니 별의 별 이유가 다 나오는데
절에 꼬불꼬불한 나무로 기둥을 한 것은 자연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쓸 만한 재목이 없어서 그렇고
한국이 일본보다 폼나는 절과 건축물이 적게 남은 것도
한 번 태워 먹은 후 재건을 못해서 그렇다.
화폐경제가 왜 이렇게 한국사에서는 꽃피기가 힘들었는가
가난해서 그렇다.
먹고 살 만하면 화폐경제는 하지 말라고 해도
낭중지추처럼 솟아 나오게 되어 있다.
한국 역사를 단 하나의 단어로 정의 할 수는 없고
4-5개 단어를 엮어야만 한국역사를 비로소 정의할 수 있다고 보는데
그 중 빼 놓을 수 없는 하나의 단어가 가난이다.
한국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난을 빼 놓으면 본질을 뚫지 못할 수 밖에 없다.
요는 이 가난을 옆에 끼고 도대체 어떻게 수천 년을 안망하고 버텼는가
이것 역시 한국사 특징을 정의한 요소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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