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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부터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이들이 정계에서 물러나 있을 때
학자라든가, 문인이라든가 하는 이름을 허여해 주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보자.
조선시대 후기. 잘나가는 산림들은 중앙정계에서 잘 안풀리면 항상 돌아와 제자를 키운다는 미명하에 학자인양, 문인인양, 명필인양했지만,
정치판 기웃거리다 시간 날 때 하는 공부와 시와 글씨가 그게 제대로 되어 있었을 리가 있는가?
조선후기 학자라는 이들 치고 제대로 된 이 하나 없는것도,
시라고 쓴 거 치고 하나 가슴을 치는 구절 하나 없는 것도,
소위 명필이라는 글씨들 치고 좌우정렬, 크기도 하나 못맞추고 있는것도
다른 거 아니다.
전부 정치판 기웃거리다 남는 시간에 공부하는 둥, 시쓰는 둥, 글씨쓰는 둥 했기 때문이다.
정치판 기웃거렸으면 학자, 시인, 서예가 이런 이름 다 떼야지.
그때는 자기 직업이 정치가가 되는 거지,
정치판 안 풀린다고 돌아와서 다시 학자 흉내, 시인 흉내, 서예가 흉내를 내고 있으니
조선후기 우리 학계와 문단, 예술계는 그렇게 적막했던 것이다.
에도시대에 조선 선비가 일본을 가르쳐?
지금도 시인이라고 시 쓰고 공부하던 인간들이 정치한다고 돌아다니느 인간이 널렸는데,
일본애들이 바본가?
여가 시간에 공부하고 시 쓰고 글씨 쓰는 애들한테 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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