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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김유신 탄생 전야, 서현과 만명의 결합

by 한량 taeshik.kim 2020. 9. 14.

김유신이 어떤 사연을 통해 잉태되고 태어나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유일한 근거는 삼국사기 권 제41(열전 제1) 김유신 上이 저록한 다음 대목이다.

 

일찍이 서현이 길에서 갈문왕葛文王 입종立宗의 아들인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萬明을 보고는 마음에 들어 눈짓으로 꾀어 중매를 거치지 않고 결합했다. 서현이 만노군萬弩郡 태수太守가 되어 만명과 함께 떠나려 하니, 숙흘종이 그제서야 딸이 서현과 야합한 것을 알고 미워해서 별채에 가두고 사람을 시켜 지키게 하였다. 갑자기 벼락이 문간을 때리자 지키던 사람이 놀라 정신이 없었다. 만명은 창문으로 빠져나가 드디어 서현과 함께 만노군으로 갔다. 서현이 경진일庚辰日 밤에 형혹성熒惑星과 진성(鎭星) 두 별이 자기에게로 내려오는 꿈을 꾸었다. 만명도 신축일辛丑日 밤에 한 어린아이가 황금 갑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곧바로 임신하여 20개월만에 유신을 낳으니 때는 진평왕 건복建福 12년, 수隋 문제文帝 개황開皇 15년 을묘(595)였다.

 

 

너무나 유명한 이 이야기라 중언부언이 필요는 없으리라. 다만 기억할 점은 김유신 엄마 만명은 아버지가 입종갈문왕 아들인 숙흘종이라는 사실이다. 엄마가 누구인지는 보이지 않는다. 입종갈문왕이라면 지증왕 둘째아들이면서 법흥왕 동생으로서 진흥왕 아버지다. 따라서 진흥왕과 숙흘종은 적어도 아버지는 같은 형제가 된다. 

 

덧붙여 두 사람 결합을 시종 반대하면서 그 방해 공작을 유별나게 편 사람으로 삼국사기는 숙흘종을 거론한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두 사람이 정식 중매 없이 지들끼리 맘대로 몸을 섞어서라고 한다. 이를 야합野合이라 한다. 

 

서현이 만노군 태수로 간 이유가 이에서는 마뜩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실로 우연히 그쪽으로 임명장을 받고 떠나려하는데 마침 만명 아비 숙흘종이 자기 딸이 그와 놀아난 사실을 알고는 분노에 휩싸여 딸을 가두었다 했으니, 둘이 함께 만노로 가려는 움직임을 눈치채고는 이리 조처한 셈이 된다. 

 

한데 이런 구도는 여러 모로 논리적 정합성을 결여한다. 개중 하나가 기어이 감옥 같은 별채를 탈출하고는 내 사랑 서현을 따라 만노로 도망간 딸에 대해 이후 추가적인 귀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덧붙여 중매를 거쳐야 혼인? 어찌 신라답지 않은 기술이다. 

 

이런 저간의 의문들, 혹은 불합리성을 근자 새로 출현한 화랑세기와 비교해 보자. 이 일이 워낙 유명했던지, 아니면 역시 김유신이라서인지는 모르지만, 현재 우리한테 주어진 화랑세기에서는 두 군데에 걸쳐 이 사건이 다음과 같이 언급된다.  

 

첫째 12세 보리공 전 대목이다. 

 

그때 만룡의 형 만명은 나이가 들었지만 혼인을 허락받지 못한 상태로 서현랑과 사(통)했다. (만명 엄마인) 만호는 본래 (서현 엄마이자 김무력 아내이면서 진평왕 딸인) 아양阿陽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러므로 노하여 불허하고는 (보리)공한테 명하여 용춘공으로 하여금 서현랑을 대신하토록 하니 서현 역시 그 지위를 거절하면서 용춘공한테 넘겨주었다. 그러나 만명의 (서현을 향한) 정과 사랑은 더욱 굳어져 몰래 서로 도망쳐서 만나곤 했다. 만호는 이에 만명을 가두고는 서현을 만노로 내쳐버렸다. 만명은 탈출하여 함께 도망하니, 태후는 더욱 노하여 벌을 주려했지만 (보리)공과 (만명 동생인) 만룡이 힘써 태후의 노여움을 풀어 무사하게 되었다.

 

이를 보면 사전 부모 허락없이 두 사람이 몸을 섞은 것은 삼국사기 기술과 일맥상통한다. 한데 뜻밖에도 이들의 결합을 맹렬한 반대한 이는 삼국사기에서는 전연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엄마 만호태후다. 

 

만호태후가 누구인가?

 

먼저 삼국사기 신라 진평왕본기에 이르기를 진평왕은 "진흥왕의 태자 동륜銅輪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김씨 만호부인萬呼夫人이니, 갈문왕 입종立宗의 딸이다.

삼국유사 왕력 편 신라 제26대 진평왕眞平王에서는 진평왕 엄마가 "입종갈문왕立宗葛文王 딸인 만호萬呼이니 만녕부인萬寧夫人이라고도 하며 이름은 행의行義다"라고 했다. 

 

이렇게 되면 골 때린다. 김유신 엄마 만명은 아버지 숙흘종은 물론이고 엄마 만호태후 역시 아버지가 같은 입종 갈문왕이다. 아버지 엄마가 같은 동부동모同父同母간 결합은 당시에도 근친상간으로 간주되었거니와, 숙흘종과 만호간 결합은 결국 어머니가 다른 씨다른 형제자매간 결합이 된다.

 

한데 이 화랑세기에 의하면 엄마 만호태후가 서현-만명 결합을 반대한 이유는 사전에 허락을 받지 아니해서가 아니라, 엄마끼리의 원한에서 비롯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만명 엄마 만호태후는 서현 엄마 아양이라는 으르렁하는 사이였다. 


서현 엄마 아양이 누구인가? 진흥왕의 적통 공주로서 무력과 혼인해서 아들 서현을 둔 것이다. 따라서 그 신분 지위가 녹록치 않은 왕실 여인이었다. 이 왕실을 주름잡는 여인들끼리 대판 붙곤 한 모양인데, 하필 이 경우에 해당했다는 것이다. 

 

덧붙여 서현은 때마침 인사 이동에 따라 만노로 간 것이 아니라, 딸과 결합한 데 대한 분노로 만호가 감행한 인사였다고 한다. 이 점이 삼국사기와 왕청 나게 다르다. 만호는 딸과 서현을 떼어놓을 요량으로 서현한테 여러 인사상 불이익을 준다. 개중 하나가 경주에서는 먼 지금의 충북 진천으로 인사발령내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역시 여자가 눈이 뒤집히면 못할 일이 없다. 만명이 내 사랑 보고파요를 외치면서 아예 만노로 도망쳐서 거기서 아예 살림을 차려버린 것이다. 

 

황당한 만호태후. 믿은 딸이 또 배신을 때린 것이다. 노발대발 당장 잡아오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이때 구원투수가 등장한다. 애지중지하는 보리랑, 또 애지중지하는 다른 딸 만룡이랑(둘은 부부였다고 기억한다만) 극구 뜯어말린다. 

 

"기왕 이리된 거 어쩌겠습니까? 그냥 놔두시지요."

 

결국은 어쩔 수 없이 만호태후도 못 본 체 하고 만다. 

 

이보다 자세한 이야기가 화랑세기 다른 데서도 나오느는데, 저 결합에서 태어난 김유신 열전인 15세 유신공 전 대목이다.  

 

15세 유신공은 서현 각간 아들이다. 어머니는 만명부인인데 곧 만호태후의 사녀私女다. 아버지는 숙흘종肅訖宗인데, (숙홀종 또한 만호태후랑 마찬가지로) 또한 입종 갈문왕 아들이다. 처음 만명과 서현이 야합하여 임신하였는데 태후는 서현이 대원신통大元神統류이기에 허락하지 않았다.이에 만노로 도망하여 무릇 스달 만에 아이를 낳았는데 꿈의 상서로움이 많았다. 진평대왕은 사매私妹가 괴로움을 받자 서현공을 만노에 봉하였다. 공은 자라자 태양과 같은 위용이 있어 태후가 보고 싶어하며 돌아올 것을 허락하여 보고는 기뻐하며 "참으로 내 손자다"고 했다. 이로써 가야파가 마침내 받들었다.

 

 

만호는 남편 동륜태자가 일찍 죽자 개가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남자를 두게 되는데 개중 한 명으로 숙흘종을 끌어들여 거기서 씨를 받아 딸 만명을 낳게 된다. 그런 까닭에 화랑세기에서는 만명을 만호태후의 사녀私女라고 한 것이다. 왕실 어른인 만호가 정식 혼인이 아닌 사사로운 결합으로 씨를 받아 낳은 딸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만명은 공주 대접을 받았던 듯하다. 

이에서 화랑세기는 한발 더 나아가 만호와 아양은 혈통이 달랐다 한다. 왕비나 모후를 비롯한 신라 왕실 여인들은 대원신통 아니면 진골정통 두 부류로 나뉜다. 철저히 모계로만 계승되며 이 혈통에 의하면 만호는 진골정통이고, 아양은 대원신통이다. 이 두 혈통이 박터진 궁중 암투를 벌이곤 했다. 

 

우리가 남이가? 

 

이것이 당시 신라왕실 구호였다. 

 

이 유신공 전을 보면 만호태후가 실은 포기한 이유가 있다. 만명이 그만 임신을 해 버린 것이다. 임신한 상태에서 남자 따라 만노로 도망가니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데 우리가 눈여겨 볼 점은 만명태후가 서현을 애초 만노로 내칠 적에는 태수 자리를 주지는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변변찮은 자리를 주고는 그쪽에 가서 일하라 한 모양인데, 그러다가 저리 되고 보니, 만호태후 아들이면서 만명의 오빠인 진평왕이 남들 보는 눈도 있으니 서현을 만노군 태수에 임명했다는 뜻이다. 

 

암튼 어쩌겠는가? 노발대발 분노를 멈추지 못한 만호태후도 딸이 임신까지 해버렸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흘러, 마침내 딸이 아들을 순산했다는 연락이 날아들었다. 또 조금 있으니, 그 손자가 열라 똑똑하다는 말도 들려왔다. 

 

손자가 보고파 미친 할매가 마침내 저들을 불러들인다. 손자를 보니???? 으랏? 열라 잘 생기고 열라 똑똑하네?

 

푹 퍼질러져 버린 만호태후는 금이야 옥이야 내 손자 내 손자하며 김유신을 끼고 돈다. 김유신이 출세가도를 달린 배경에는 만호태후라는 실로 막강한 권력이 있었다. 

 

저 사건이 벌어졌을 무렵, 전후사정을 보면 서현의 아버지 무력과 어머니 아양은 이미 죽고 없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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