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기후 변동표. 가운데 가로선이 지금 기온이고 이보다 높으면 위로 선이 그려진다. 대략 수당오대-북송때까지가 현재보다 평균기온이 높았고 그 후부터 지금까지는 계속 낮았던 것을 알수 있다.
한국처럼 벼농사를 아슬아슬하게 짓는 나라에서는 평균기온이 2-3도 올라가면 벼농사가 풍작의 연속이 되겠지만 온도가 지금보다도 더 내려가면 흉작의 위험에 더 심하게 처하게 될것이다. 일본이나 중국남방처럼 벼농사에 기후적 여유가 좀 있는 나라라면 다를수도 있겠지만 한국이라면 기온의 변화가 그만큼 더 민감할수 밖에 없다.
통일신라 시절의 기록, 어느 시대나 옛날은 좋았다는 기억이 있다지만,
“경사(京師 : 경주)에서 해내(海內 : 울산 바다)에 이르기까지 가옥과 담이 연달아 있었으며 초가집은 하나도 없었다” 던가, “민간에서는 기와로 지붕을 덮지 띠로써 덮지 않으며 숯으로 밥을 짓지 나무로 짓지 않는다”, 던가 하는 통일신라 사기의 기록은 번성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적고 있다. 조선말기 한성부의 정황을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정경이다.
단지 통일후의 전성기라던가 수탈의 결과물이라는 단순논리 이상의 이유가 그 배경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뜻이다.
과연 20세기 이전에 지금보다 연평균기온이 2도가 낮았다면 쌀농사가 제대로 됐을까? 고려 중기 이후 한국사의 질곡에는 이런 문제도 결부되어 있을지 모른다. 반대로 연평균 기온이 2도가 높았다면 농사는 어찌 되었을까? 통일신라시대의 상대적 넉넉함은 이런 부분에서 기인한것인지도 모르겠다. (성안의 시장 물가는 베 한필에 벼가 30석에서 50석 정도 했으며, 백성들은 성군의 시대라고 칭송했다, 삼국유사 기이 태종춘추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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