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도京都의 시설 중 가장 중요한 공간은 궁궐이다.
경복궁은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처음 지어진 조선 왕조의 법궁이었다.
그 후 태종이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한 후 이궁離宮으로 창덕궁을 새로 지었다.
창경궁은 왕위에서 물러난 태종이 거주할 목적으로 지었던 수강궁 터에 성종이 1483년(성종 14) 정희왕후, 인수대비, 안순왕후를 위하여 건축한 궁궐이다.
임진왜란으로 조선의 궁궐은 모두 소실되었다가 1610년(광해군 2)에 창덕궁이, 1616년(광해군 8)에 창경궁이 재건되었다.
법궁인 경복궁은 이때 재건되지 않고 1868년(고종 5) 대원군에 의해 중건되었다.
경희궁은 1616년(광해군 8) 정원군(인조의 아버지, 원종으로 추존)의 옛 집에 세워진 궁궐이다.
경희궁이 창건되면서 법궁은 창덕궁, 이궁은 경희궁이라는 새로운 양궐 체제가 성립되었다.
한편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황제가 경운궁(현재 덕수궁)에 거주하면서 궁궐은 모두 5곳이 되었다.
5곳의 궁궐을 경영했다는 점은 조선 궁궐 문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Palaces of Hanyang
Among the facilities in Gyeongdo, the capital city, the most important spaces are the palaces, Gyeongbokgung Palace was the first main palace complex of the Joseon Dynasty that was built after King Taejo moved the capital to Hanyang.
After returning the capital from Gaeseong to Hanyang, King Taejong built Changdeokgung Palace as the second
palace compound.
Changgyeonggung Palace was built in the fourteenth year of King Seongjong's reign (1483) at the site of Suganggung Palace.
After all the palaces of the Joseon Dynasty were destroyed by fire during the Imjin Waeran (Japanese Invasion of Joseon in 1592), Changdeokgung Palace was restored in 1610 and Changgyeonggung Palace in 1616.
Gyeonghuigung Palace was built at the site of the home of Prince Jeongwongun, which led to the establishment of the new double palace system with Changdeokgung Palace as the main palace compound and Gyeonghuigung Palace as the second palace compound.
When King Gojong proclaimed the founding of the Korean Empire in 1897 and resided in Gyeongungung Palace (now Deoksugung Palace), there were a total of five palaces in Korea. Managing the five palaces, was an important feature of Joseon palace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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