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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할아버지의 장인어른의 장인어른도 할아버지

by taeshik.kim 2023.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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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오씨 참봉공파 화수도花樹圖


<사료를 읽다가-양측적 친속관계>

'나' 자신이 아버지 쪽뿐만 아니라, 어머니 쪽 가계와도 친족으로써 의식하고 있었으며 양쪽의 후손임을 자임했다는 이른바 '양측적 친속관계'는 고려시대의 사회풍속을 설명하는 중요한 논리이다. 실제 이는 많은 면에서 고려사회의 움직임을 설명해준다. 그런데 과연 고려만 그랬을까.

조선 초기의 그 유명한 안동권씨 <성화보>가 서거정(1420-1488) 같은 외손이 주도해 만들어졌고, 수록 인물 대부분이 권씨가 아니라는 점은 일단 젖혀두자. 고려 유풍이 남아있는 시절이니까. 훨씬 후대로 내려와보자.

황현(1855~1910)의 <오하기문>에 따르면, 명성황후 민씨(1851~1895)는 영남 남인의 큰 어른이었던 우복 정경세(1563~1633)를 일러 "우복 할아버지"라 하였다 한다. 왜?

우복의 사위가 서인 노론의 정신적 지주 동춘당 송준길(1606~1672)이었고, 동춘당 사위가 여양부원군 민유중(1630-1687)이었으며, 명성황후는 민유중의 6대손이기 때문이다.

할머니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핏줄이 닿으므로 후손이라는 논리다. 이는 어쩌면 남인을 무마하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나온 걸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양측적 친속관계 같은 의식이 없으면 나올 만한 말은 아니다.

왕실이나 명문가에서 볼 수 있는 팔고조도 같은 것도, 그러한 의식의 편린을 엿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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