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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생각도 안 한 금점판, 실록 충남반세기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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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를 다 졸업했고, 지금도 부모님이 살고 계시니 내 정체성이 생긴 곳이 어디냐 물으면 대전입니다 라고 해도 크게 틀리진 않을 것 같다.

모처럼 설을 맞아 대전에 온 김에, "대전발 0시 50부~~ㄴ"을 흥얼거리며 대전역 앞에 갔다. 지인을 만나려면 1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하는 상황, 때마침 횡단보도 너머에 헌책방이 하나 있다.

"옳거니!"하고 길을 건너 홀린 듯이 들어간다. <동아일보사사> <조선일보 사설선집> 같은 걸 제외하고 그닥 쓸만한 책은 많이 없었는데, 우연히 눈길 닿은 곳에 이 책의 책등이 있었다.

집어들고 팔랑팔랑 넘겨보는데 어어, 이것 물건이었다. 3천원인가를 헌책방 주인께 드리고 품에 이 책을 넣어오고, 비행기에 태워 제주 땅에까지 모셔왔다.

한 며칠 대전에선 탐라 이야기만 포스팅했는데 이제 제주에서 대전 충남 이야기를 포스팅한다니 거 참 재밌는 일이다.

이 책은 75년도에 <대전일보>에 연재한 이야기를 엮어 83년에 발간했다. 부제 그대로 "구한말에서 6.25까지" 대전 충남 일대와 관련된 야화野話를 수집한 기록인데, 해방 후 30년밖에 안 된 시점이어서인지 일제강점기 시절 내용이 퍽 생생하다.

이런 류 기록이 흔히 그렇듯 교차검증이 필요하겠지만(일부 사실관계가 틀린 부분이 보인다)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아주 흥미롭다.




내가 박물관에 근무해서 그런지, 특히 주목되는 건 공주와 부여의 고적보호 관련 대목이다. 가루베 지온輕部慈恩은 여기서도 빠지지 않지만, 그보다 더 재밌던 부분은 '부여박물관扶餘博物館 이야기'이다.

정확히는 조선총독부박물관 부여분관 시절 이야기인데, 홍사준洪思俊 선생의 증언을 직접 따 기록한 것이니 꽤 믿을 만 하다고 본다.

근데 지금 같으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들이 그때는 일상다반사였다고 해야 할까.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1) 일본에서 귀빈들이 부여에 구경오면 부여 군청에서는 기념품을 주었다. 그런데 그 기념품이란 것이 부소산성 군창터에서 나오는 백제 때 탄화미炭化米였단다.

봉지에 그 불탄 쌀을 담아서 주면 조선총독, 경성제대 총장, 일본군 사단장 같은 거물들이 "크게 호기심을 갖고 마치 귀중한 보물이라도 얻은 듯 기뻐했다."

그러다 부여고적보존회가 생긴 1933년 이후 군청은 '백제쌀' 석 되를 인계했고, 이후 군창지에서 출토되는 쌀도 고적보존회가 맡게 되었다. 그러자 탄화미 기념품의 수요가 딸려서 가짜까지 나돌았다고 한다.

혹시나 일본에서 부여 탄화미 봉다리가 경매 같은데 나올지 모르겠다.

헌데 이를 구입해서 들여온다면 세관이 이를 농산물로 봐서 관세를 물리려나?


2) 당시 충남지사가 부여박물관에 관심을 가지고 진행상황을 보고 있었다. 그때 공주에 살던 어떤 일본인이 말馬에 취미를 가지고 전 세계 말 모형 200여 개를 수집해 갖고 있었는데 충남지사가 이 모형에 욕심을 내어, 박물관에 기증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부여박물관 입장에선 백제 때 유물도 아니고 단순한 말 모형인데 싶어 떨떠름했지만 도지사가 권한 건데(심지어 관용차로 날라다주었다고) 전시를 안할 수도 없어 결국 전시장에 넣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 말 모형들이 부여박 소장품으로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있다면 오히려 제주박물관에서 써 먹어볼 수 있을지도.





3) 1936년인가, 부여박물관에서 나온 사람들이 백마강에 배를 띄웠다. 낙화암, 자온대 등등을 다니며 무언가를 골고루 뿌렸다.

무슨 일을 한 걸까? 이 무렵 부여 백마강엔 조개가 없었다. 조개를 먹으려면 멀리 강경까지 가서 사와야했다. 이에 부여 사람들은 백마강에서 조개양식을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어째서인지 그 사업을 박물관이 맡게 된 것이다.

박물관 직원들이 배에서 뿌린 것은 씨조개였다. 세 가마니를 백마강에 뿌렸다는데, 잘 자라주어서 오늘날(75년)까지도 그 후손들이 백마강에 널리 퍼졌다고.

- 부여 조개탕이 유명하던가? 우여회는 들어봤지만. 그런데 왜 군청도 아닌 박물관이 뜬금없이 양식업을 떠맡게 되었을까...


4) 옛날 백마강엔 종어宗魚라는 물고기가 있었다. 20-50cm 정도 길이에 담갈색을 띄는데 그 맛이 천하일품이라 조선총독도 감탄을 금치 못하고 천황에게 진상했다고 한다.

지금은 멸종하고 사진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만(대동강에서 잡힌 종어 사진만 있다).

그런데 1934년 부여군청에서 2척, 곧 60cm가 넘는 종어 한 마리를 표본으로 만들어 박물관에 기증했다는 것이 아닌가.

또 부여 군수실에 그 표본이 하나 더 있다고 적혀 있다.

- 만약 지금도 부여박에 이 종어 표본이 남아있다면 과학관이나 천연기념물센터나, 자연사박물관에 임시이관해도 좋을 텐데. DNA분석도 하고...


대강 훑어도 이 정도다. 이거 참, 전혀 기대치 않았던 금맥을 찾아낸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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