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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할아버지 백사가 개고생해서 손자한테 써준 천자문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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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이 신규 보물로 지정한 목록이라 해서 오늘(28일) 공개한 것 중에 '이항복 해서 천자문 李恒福楷書千字文'이라는 이름을 얻은 존재가 유난히 내 눈에 띈다.

천자문은 널리 알려진 한자 초보 학습용 교과서로, 그런 성격으로서의 이런 교과서가 행서나 초서 혹은 전서로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당연히 가장 반듯한 인쇄체 글씨에 가까운 해서楷書로 작성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문화재위원회가 고민을 하기는 했겠지만, 저 문서 제목은 그냥 이항복 천자문으로 했어야 한다고 본다. 해서라는 말이 들어감으로써 누더기 같은 느낌도 준다. 하긴 뭐 초서면 어떻고 전서면 어떠랴? 
 

맨 왼편이 발문이다. 저 글자를 당시 다섯살 난 손자가 알아봤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번 이항복 천자문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 천자문에는 발문이 있다.
 
“정미년(1607) 이른 여름(음력 4월) 손자 이시중에게 써 준다. 오십 노인이 땀을 뿌리고 고생을 참으며 썼으니 골짜기에 던져서 이 뜻을 저버리지 마라[丁未首夏, 書與孫兒時中. 五十老人, 揮汗忍苦, 毋擲牝以孤是意]”
 
뜻밖에도 이 부분만은 백사白沙(1556~1618)가 행서로 썼다. 이 행서를 천자문도 이제 겨우 배우기 시작한 손자가 알아봤을지는 모르겠다. 

그의 손자 이시중李時中(1602∼1657)은 생몰년을 보다시피, 할아버지 백사가 저 천자문을 손을 직접 쓸 그 당시에 만 다섯살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그때야 조기교육 확실했으니, 알아봤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저 반듯한 정자체로 이제 겨우 하늘천 따지를 배우는 어린 친구가 뭘?

이 천자문이 왜 보물로까지 지정되었느냐 하면 오직 저 발문에서 기인한다. 저 발문이 아니었다면, 저 천자문이 누구 글씨인지 알 수도 없을 테고(물론 서체 분석을 통해 백사 것이라고 추정은 했겠지만), 그 내력을 알 수 없으니 무슨 가치가 새삼 있겠는가? 그냥 하고 많은 천자문 자료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백사 천자문 본문 첫 장

 
나아가 저 천자문을 한 글자 한 글자 몇날며칠 날밤 까면서, 더구나 여름철에 땀까지 삐질삐질 흘려가면서 먹 갈아 정성스럽게 써내려가는 백사 모습이 선연하다.

저 글씨를 써줄 때 백사는 쉰둘이었다. 요즘 쉰둘이라면 그냥 평범한 중년이지만 저때만 해도 이미 손자손녀 볼 거 안 볼 거 다 본 나이라, 또 스스로도 노인 행세를 하던 시절이다. 

먹이야 종이 갈았겠지만, 저 만만찮은 분량 글씨를 써내려가는 일이 보통 고역이 아니다. 역사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 같은 데 보면 일필휘지로 마구잡이로 써내려가지만, 웃기는 소리다. 누가 그런 식으로 마구잡이로 써내려간단 말인가?

저때만 해도 제아무리 한문대가라도, 한문은 요즘 한국어를 모국으로 쓰는 사람들한테 영어 같은 외국어가 그렇듯이 외국어라 문법 표현 등등 어디 하나 신경쓰지 않을 수 없던 시절이다. 

물론 천자문이야 다른 견본을 보고서 백사가 썼겠지만, 자칫 손자한테 가오 상할 수 있으니, 얼마나 조심스럽게 필체 하나 서제 하나 하나 신경쓰면서 썼겠는가? 

할애비가 이렇게 고생해서 쓴 것이니 함부로 다루지 마라는 당부가 언뜻 삼국사기를 찬진撰進하며 김부식이 한 말이 뇌리를 맴돈다.

이 삼국사기는 신하인 김부식이 임금인 인종한테 지어바친 것이니, 겸양을 애써 강조해야 하니, 부디 이 책이 장독 덮개라도 쓰였으면 한다고 했지만, 이 천자문은 할아버지가 손자한테 주는 것이라 겸양을 강조할 필요도 없고 오직 훈시와 윽박만이 있을 뿐이라 

"너 내가 이리 개고생해서 쓴 것이니 이거 함부로 다룰래? 지기뿐데이"

딱 이 논리가 작동한다. 모든 문서는 독자가 누구냐가 이렇게 중요하다. 

 

백사 천자문 거풀데기. 후세에 많이 이용했다는 흔적 아닌가 한다.

 
이를 조사한 사람들에 의하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이 천자문은 총 126쪽인데 본문 125쪽과 발문 1면으로 구성된단다. 앞쪽 뒷면에 도장을 찍을 적에 글씨가 하얗게 나오는 백문방인白文方印으로 찍은 ‘청헌聽軒’과 ‘월성세가月城世家’라는 글자 새김 직인이 있단다.

조사 결과 ‘청헌’은 이항복 6대 종손 이경일李敬一(1734∼1820) 호라고 하니, 이때까지 그 집안 가장본으로 내려왔음을 알 수 있으니, 백사의 당부는 손자를 넘어 후손들한테도 강력한 영향력을 작동한 듯하다.

본문은 한 쪽에 두 행을 썼으니, 4자씩 8자를 125쪽에 걸쳐 天에서 시작해 也까지 1,000자를 썼다. 

각 글자 아래에서는 한글로 음과 뜻을 달았으니, 다만 이 부분은 백사 소행이 아니라 후대에 누가 보완해 넣은 것으로 본댄다. 아마 그 집안에서 누군가 이리 했을 것이다. 

나아가 이 천자문은 한 글자 크기가 약 8cm라 아주 크댄다. 얼라가 한자 학습으로 사용할 것이니 이리했을 것이로대, 혹 백사 자신이 시력이 안 좋았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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