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김해박물관 2023년 특별전 ]
▶️ 전시명: 바다를 건넌 가야인
▶️ 기간: 2023.4.28. ~ 6.25.
▶️ 장소: 국립김해박물관 기획전시실
이 소식 전하는 박물관 안내 공지문, 그러니깐 우리 업계서는 보도자료라는 것을 보고선 내가 한참을 웃었으니, 위선 그 문장투가 관공서 안내문이라면 으레 우리가 상정하는 그런 딱딱함과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어 자못 이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흥분하면서 당신들도 흥분해야 한다 윽박하는 표정이 역력하며, 나아가 그런 모습이 어쩐지 참말로 어린아이 응석 같아서 몹시도 유쾌함을 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천수백 년 전 바다를 건넌 가야인의 삶, G-컬처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고대의 한류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주역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자 합니다.
요샌 관공서 문장도 이리 써도 용납되는구나 하는 세상인가 싶다. 암튼 K-컬처 밑바닥을 잡겠다는 심산인가 본데, 그래서 G-컬처 라는 조언을 제시했으니, 그렇담 경주는 S-컬처이고, 공주 부여는 B-컬처, 나주는 마한땅이라고 우기니 M-컬처가 되는건가?
이런 특별전이 어찌 한두 사람 힘으로 가능하리오? 관장 이정근이야 국립박물관에서는 비교적 신참급 관장 아닌가 하는데 그런 까닭에 이런 자리가 오죽이나 더 신경쓰이겠는가? 학예실장은 누구인가 봤더니 양성혁이라, 내가 아무리 늙다리 축에 들어도 그나마 이 업계라 중간층으로 내려가도 비교적 아는 이름이 보인다.
내가 알기로 이번 특별전은 국립박물관 입사 직후 의무복무기간에 걸려 경주박물관에서 일한 광츠리가 그 족쇄가 풀리자마자 김해로 가서 준비한 것으로 안다. 지 마누라 하는 말을 들으니 한달간 신랑 얼굴을 못봤다 징징거리긴 하더라만, 그만큼 열심히 준비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내가 전시를 보지 아니한 상태에서 그 인상비평을 할 처지는 아닌지라, 다만 어떤 취지에서 이런 자리를 기획했으며, 또 어떤 친구들이 전시장을 채우는지를 사진 위주로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 특별전 주제가 ‘바다를 건넌 가야인’이라, 이 바다란 주로 남해와 현해탄을 말할 것이며, 그네들이 건너서 안착한 데는 보나마나 일본열도라, 나는 매양 한국해양사가 매양 일본열도를 향하는지 불만이 팽배하거니와, 그래 그네들이 가장 많이 간 데가 일본열도임은 분명할 것이나, 왜 매양 우리네 저런 해양 특별전은 일본만 상정하는지는 다시금 생각해 봤음 싶다.
암튼 이번 특별전은 어쩌면 가장 전통적인 역사인식에 기반한 그것이라 할 만해서, 가야라는 땅에서 상대적으로 선진하는 문물을 장착한 사람들이 문물과 함께 일본 열도로 물밀 듯이 건너가 그쪽에 새로운 시대 새로운 역사를 열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어떤 문물을 들고 갔는가? 이 품목에 우선 ‘철’을 맨 위 목록에 제시하니, 이것이야 새롭다 할 만한 소재라고는 할 수 없으니, 그럼에도 그리한 까닭은 담당 학예사 이름이 광철이기 때문이다. 아마 한자로는 鑛鐵 아닌가 모르겠다.
철 상품 중에서도 규격화한 ‘덩이쇠’를 주목해 달라 한다. 그것을 실은 배가 정박한 곳은 북규슈.
하지만 덩이쇠만 가져간 것은 아니다. 기마문화와 선진 무기, 그리고 각종 귀금속이 당시 왜인 사회에서는 신문물이었을 것이다.
이건 고고학 냄새가 또 잔뜩한데, 높은 온도에서 토기를 굽는 기술도 가져갔다 한다. 이른바 스에키로 일컫는 그 경질토기 제작술 출처가 가야임을 선전하고자 하는 배치일 것이다.
이는 결국 조리문화를 바꾼다. 단순히 그릇만이 아니라 부엌을 포함한 음식조리 문화 자체가 업그레이드 한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부엌도 가야문화 영향으로 보는 듯한데 부엌이라니, 그곳을 지키는 조왕신 하나로 물경 반세기를 울거먹는 김해 지역 어느 가야사 대가 얼굴이 어른어른한다.
놀랍게도 일본열도에 말과 소가 등장한 시기는 얼마되지 않는다. 이 문제는 이 블로그 필자 신동훈 선생이 열변을 토하는 문제이기도 한데, 박물관에서 이걸 잽싸게 캐취했는지, 그거 아니래도 다 아는 내용이라고 퉁을 칠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이 문제도 이참에 짚어보려는 모양이다.
이 대목을 김해씨는 이리 말한다.
“말은 빠르기가 바람 같았는데, 바다 건너에서는 그 위에 올라탄 사람들이 전투를 벌인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도 전해 들었습니다. 또한 소는 힘의 세기가 사람의 몇 곱절이었기에 이를 이용해 농사를 짓거나 무거운 짐을 나르면 더욱더 편리해지리라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이런 전시를 하려면 이쪽 전시품으로는 택도 없다. 아마 일본 쪽에서 이런저런 찬조품을 받은 모양인데, 그 일부는 첨부 사진으로 만족하기 바란다.
이와 같은 가야인과 가야문화 이주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이것이야말로 김해씨가 하고 싶은 말일 텐데 그 대목을 이리 축약한다.
“가야 이주민이 등장하면서 일본 열도는 이전과 전혀 다른 사회로 변모했으며, 그 과정에서 가야 이주민과 왜인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었습니다.”
보리문디와 모시모시가 하나되어 와까리마셍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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