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를 타는 일을 편승便乘이라 하며, 애써 초연함을 가장하는 일을 도태淘汰라 한다. 한국민속문화를 선전하고 그걸로 존재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국립민속박물관은 태생이 편승과 도태를 숙명처럼 안고 간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민속이 어찌 편하기야 하겠는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편승해야 하며, 또 살아남아야 하는 고리는 언제나 도태한 것들이다.
그런 민속박물관이 도태를 부여잡고는 요새는 아무데나 갖다 붙이는 K-를 밥상머리에 붙이고는 이것이야말로 K-콘텐츠라며 상식을 돌파하려 한다. 이름하여 조명치.
그것이 전시건 뭐건, 일단 이목을 끌어야 하는데, 그 이목을 끌 만한 문짝으로 생소함을 유발하는 것만큼 좋은 소재 없다. 조명치가 뭐냐?
싱겁기 짝이 없으나 조기 명태 멸치다. 이것만으로는 에이 사기네 하는 핀잔을 우려했음인지 부제 하나를 더 내세운다.
“조기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
무슨 말일까? 위선 조기를 제일 앞에다 세웠으므로 그 의뭉함에 다가선다.
아, 그 전에 저 메인타이틀, 그리고 그 서브타이틀에서 이 업계 사정을 비교적 잘 아는 나 같은 사람들은 특정한 사람 얼굴이 어른어른한다.
틈만 나면 어촌으로 나가 민속조사한답시며 저 일로 어민들과 부대끼며 그걸로 희희낙락 소일거리를 삼으며, 딴에는 어부 흉내 낸답시고 가끔은 소주잔 막걸리잔 기울이며 딴에는 박정희 코스프레 하면서도 국민세금이 꼬박꼬박 부담하는 월급 타박타박 타간 김창일이라는 학예연구사다.
이 친구 하도 현장 체질이어서 더 그렇겠지만, 팔뚝이 마동석 만하다. 이런 친구 왜 범죄도시 시리즈는 조연으로 안 부르는지 몰라? 이번 시리즈 3에서는 마석도가 서울광역수사대로 갔다지만, 4편 혹은 5편에서는 어촌을 무대로 마약 밀매를 일삼는 김창일 일당을 소탕하는 그런 이야기로 풀어갔음 한다.
객설이 길었다. 조기가 울까?
창일이가 말하기를 조기는 운다고 하며 그 소리는 개구리 우는 그것과 비슷하다 한다. 민어도 운다 하는데, 민어야 비싸기라도 하지 값싼 조기가 왜 운단 말인가? 그래서인가? 어째 아버지 제사상 오르는 조기가 눈물이 고인 일이 많은가 싶기도 하다. 불쌍하니 이젠 더는 올리지 말아야 할까?
하지만 지금 우리네 바다에선 조기울음이 더는 들리지 않는단다. 환경이 변한 탓도 있겠고, 저인망 쌍끌이로 싹쓸이를 해서일 수도 있을 테니, 암튼 서해를 주름잡던 그런 우는 조기가 더는 서해로 북상하지 않는다 한다. 그렇다면 그 많은 K-밥상 조기는 어디에서 공수한단 말인가? 창일이가 말한다.
지금은 맛과 모양새가 비슷한 물고기를 찾아서 머나먼 아프리카까지 가서 수입한다.
그래서 더는 조기는 울지 않는다고 한다. 저 말, 이 내력 들춰 보면 몹시도 씁쓸하다. 어째 저 슬로건이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를 흉내낸 느낌이 짙다.
그런 조기가 우리네 일상과 얼마나 밀접했던가를 증명하고자 할 때 항용 이름께나 들어본 조선시대 어느 저명한 학자를 불러내 그 육성 증언을 소환하기도 한다.
민속이가 이번에는 서유구徐有榘(1764~1845)를 청문한다. 그가 남긴 글로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라는 요상한 책이 있나 본데 그에서 이리 말한댄다.
“상인 무리가 구름처럼 모여들어 배로 사방에 실어 나른다. 소금에 절여 건어를 만들고, 소금에 담가 젓갈을 만든다. 나라 안에 흘러넘치는데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귀한 생선으로 여기니, 대개 물고기 중에서 가장 많고, 가장 맛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이다. 또 정약전丁若銓(1758~1816)도 찬조출연한다.
동생 약용이랑 불신지옥 예수천국 부르짖다 일망타진되어 저 전라도 해변으로 축출된 그는 유배지에도 할 일도 없고, 그래서 에랏 이참에 어류박물지나 하나 써 보자 해서 완성한 것이 자산어보玆山魚譜라, 그 첫 머리에다가 하필 조기를 ‘석수어’라는 이름으로 박았네? 그러니 이걸 민박이가 놓칠 리가 없지.
“조기 떼를 만날 적이면 산더미처럼 잡을 수 있으나 전부를 배에 실을 수 없다”
그만큼 당시 어획량이 많았다는 뜻이겠는데, 많으면 뭐해? 내가 어릴 적 1970년대까지 내 고향 경북 김천 땅만 해도 돈이 있어야 조기를 사 먹지?
하긴 조기건 갈치건 소금반이라, 또 그나마 절반은 썩은 상태였으니, 그래 물류와 교통이 발달하지 아니한 그런 내륙 산촌으로 들여오려면 소금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싶기도 하다.
그 생생함을 살리고자 이번 전시에서 민박이는 조기 울음소리를 틀어놓는다는데, 녹음은 누가 했을라나.
조기야 글타 치고 명태는 어떤가?
민박이가 이 친구를 소개하기를 ‘봄에 잡으면 춘태, 가을에 잡으면 추태, 그물로 잡으면 망태, 낚시로 잡으면 조태, 새끼는 노가리, 갓 잡으면 생태, 얼리면 동태, 말리면 북어, 반쯤 말리면 코다리, 얼렸다 녹였다 반복하면 황태...’ 등등이라 해서 어획시기, 어획방법, 크기, 건조 정도 등에 따르 부르는 이름이 물경 60개에 이름을 주목한다.
조기가 서해의 왕자였다면, 동해는 명태 차지였다. 하지만 이 명태 역시 조기가 그런 것처럼 어느 한 순간 약속이나 한 듯이 사라졌다.
이규경李圭景(1788~1856)이 그 이름도 요상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라는 낙서장 모음집 귀퉁이에다가 명태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명태는 추석부터 많이 잡혀서 그물질 한 번에 배가 가득 차 산더미처럼 쌓인다”라고 했고,
앞서 본 난호어목지에서 서유구는 “원산은 사방으로 장사꾼이 모여드는 곳이다. 명태 운송은 동해 물길을 따르고, 말로 실어 나르는 길은 철령을 넘는데 밤낮으로 그치지 않고 이어져 나라에 넘쳐난다”라 했으며,
비근한 사례로 1917년 명태는 조선 총어획량 28.8%를 점거했다니, 언터처블 넘버원 피시였지만 다 이선희다. 아 옛날이여.
이 명태야말로 K-푸드 선두주자다. 식민지시대 일본 어류 가공 회사가 함경도에서 가공한 명란을 수입해 갔는데 이것이 바로 일본인 식탁에 명란이 오르는 계기가 됐다 하니 말이다.
부산에서 태어난 가와하라 도시오川原俊夫(1913~1980)라는 일본인이 있는 모양인데, 자연 그 또한 명란젓에 빠져들게 되고 제국 일본이 패망하자 후쿠오카로 건너가서는 일본인 입맛에 맞게 개량한 명란젓 팔아 떼돈 벌기도 했단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딴 놈이 거둬간 셈인가.
명태를 일본에서는 ‘멘타이’에 ‘새끼’를 뜻하는 일본어 코[子]를 합쳐 멘타이코[明太子]라 한다는데, 이뿐만 아니라 중국어 ‘밍타이위’, 러시아 ‘민타이’ 역시 한국어 명태를 빌려간 것이라 한다. 창일이 말이라 믿어줄 수밖에. 안 믿으면 지옥간다.
그렇다면 멸치는?
K-푸드를 내세웠으니, 그에서 차지하는 멸치 위상을 점검한다. 그 K-푸드에 멸치 없는 밥상은 앙코 빠진 찐빵이랑 진배없다고 민속이는 강조한다. 그래야 K-밥상이겠지.
민박이가 자산어보를 너무 자주 불러내는 느낌이 있는데, 이건 아마도 창일이 독서에 기인하지 않을까 한다. 딴 책도 좀 읽어봤음 하지만 소주잔 막걸리잔 기울이느라 여념이 없기는 했으리라. 암튼 약전이, 한데 왜 자꾸 약전이가 아니고 설경구가 어른어른하지? 암튼 설경구가 이르기를
“이 물고기로는 국이나 젓갈을 만들며, 말려서 포脯도 만든다. 때로는 말려서 고기잡이의 미끼로 사용하기도 한다. 가거도에서 잡히는 멸치는 몸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는 겨울에도 잡힌다. 그러나 관동에서 잡히는 멸치보다 못하다. 살펴보니 요즘 멸치는 젓갈용으로도 쓰고, 말려서 각종 양념으로도 사용하는데 선물용으로는 천한 물고기다.”
라고 했댄다.
저런 전시한다고 민박이가 선전한지는 좀 됐다. 하도 요란하기에 언제 개막하냐 궁금했더니, 마침내 민박이가 보도자료를 떡 하니 뿌리고선 많이 와달라 읍소한다.
그러면서 이르기를 ”우리의 대표 물고기 조기·명태·멸치가 지닌 문화적 의미를 찾고, 현재 우리 바다가 처한 상황까지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전시를 준비했다.” 하는데, 여기까진 좋아, 직후 이어지는 문장이 이렇다.
”오랜 시간 해양문화를 조사·연구하고 있는 학예연구사가 전시를 맡았다.”
이 친구가 창일이다. 어찌 전시가 특정한 학예연구사 힘만으로 가능하리오? 그런 까닭에 실명을 노출하지 않음으로써 이 작업이 공동의 소산임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민박이는 이번 전시를 다큐멘터리를 연상케 하는 방식으로 준비했다 한다. 우리네 밥상에서 시작해 선원, 황태 덕장 사람들, 어시장 상인, 위판장 경매사와 중도매인, 시장 상인, 조리사 등 조기·명태·멸치에 의존해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로 시끌시끌하댄다. 정숙과 우아를 버리고 생업현장 왁자지껄한 소리와 비린내를 낸다고 한다.
1940년대 촬영한 명태 관련 영상과 바다에서 들리는 조기의 울음소리를 비롯한 여러 시청각 자료를 서비스한다는데, 야심차게 준비했음을 내가 알기에 다들 관람을 강권한다.
그러면서 민박이는 묻는다.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여항의 평민은 명태로 포를 만들어 제사상에 올리고, 가난한 가계의 유생 또한 제물로 올릴 수 있으니, 흔한 것이면서 귀하게 쓰인다‘라고 했다. 명태와 조기는 흔해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었기에 제사상에 오르는 제물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이규경은 멸치에 대해 말하기를 “그물을 한 번 치면 배에 가득 차는데 곧바로 말리지 않으면 썩어서 퇴비로 쓰고, 산 것은 탕을 끓이는데 기름기가 많아서 먹기 어렵다. 마른 것은 날마다 반찬으로 삼는데, 명태처럼 온 나라에 두루 넘친다”라고 했다. 온 나라에 두루 넘쳐서 날마다 반찬으로 삼을 수 있는 물고기가 멸치였다. 결국 조기, 명태, 멸치는 흔해서 우리에게 소중한 물고기였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서해로 북상하는 조기 떼 따라 수천 척 어선이 뒤따르고, 어선 뒤를 또 수백 척 상선이 줄짓던 이른바 ‘파시波市’, 즉 ‘파도 위 시장’은 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태는 동해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 돌아올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 동해에서 명태 어획량은 ‘0’이므로 100% 외국에서 들여온다. 2022년 수산물 총수입 121만 7,969톤 중에서 냉동 명태 수입이 33만 6,287톤이다. 동해에서 단 한 마리 명태도 잡히지 않지만, 소비량은 오히려 늘었다. 멸치는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우리네 밥상을 좌지우지하는 물고기다. 한국인 밥상의 숨은 주인공이다. 우리나라는 수산물 수입국 세계 1위의 국가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해산물을 먹는 한국인. 그리고 그 중심에는 조기, 명태, 멸치가 있다. 여전히 우리는 조기, 명태, 멸치의 나라이다. 이들이 가득 차 있던 바다를 그리워하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해양생태계의 변화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밥상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
몹시도귓전을 때린다.
전시제목: 조명치 해양문화특별전 전시기간: 2023. 5. 3.(수) ~ 2023. 8. 15.(화) 전시장소: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Ⅰ 4. 전시내용: 조기, 명태, 멸치가 한국인에게 주는 의미 5. 전시자료: 전라도무장현도 등 150여 점 6. 전시구성 ㅇ 프롤로그 ㅇ 1부. 밥상 위의 조명치 1-1. 일상 음식 1-2. 맛의 지휘자 1-3. 제의 음식 ㅇ 2부. 뭍으로 오른 조명치 2-1. 어시장과 어물전 2-2. 위판과 파시 2-3. 말리고 담그고 ㅇ 3부. 조명치의 바다 3-1. 조기를 따라 3-2. 명태의 나라 3-3. 천시받으며 ㅇ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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