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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한림별곡翰林別曲 '뎡쇼년'은 고려판 '오렌지족'?

by taeshik.kim 2023.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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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8 11:54:27
<'뎡쇼년'은 고려판 '오렌지족'?>
황병익 교수 한림별곡 분석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당당당 당추자(호도나무), 조협(쥐엄)나무에 / 붉은 실로 붉은 그네를 매옵니다 / 당기거라 밀거라 뎡쇼년아! /아, 내가 가는 그곳에 남이 갈까 두려워 / 옥을 깎은 듯 부드러운 두 손길에 옥을 깎은 듯 부드러운 두 손길에 / 아, 손 잡고 노니는 모습 그 어떠합니까."

고려 고종(高宗) 시대 한림학사(翰林學士)들의 합작품이라는 경기체가(景幾體歌) 작품인 한림별곡(翰林別曲) 제8연이다. 붉은 실로 맨 그네를 여인들이 타고, 그들을 '뎡쇼년'들이 밀고 당기고 하는 풍경이 눈에 선하다.

이 뎡쇼년은 한자표기가 정소년(鄭小年). 언뜻 보면 정씨 성을 지닌 소년인 듯하다. 실제 그렇게 푼 연구자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보기에는 뭔가가 시원치 않다. 그네를 밀고 당기는 소년이 한두 명이 아닐 터인데 유독 정씨 집안 소년들만 떼지어 나왔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김준근 풍속도 그네타기



그네를 타는 여인과 희희낙락하는 '뎡쇼년'을 보면 어쩐지 90년대 한국문화사를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인 '강남 오렌지족'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면 '뎡쇼년'은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한국고전시가 전공인 황병익 경성대 국어국문학과 초빙외래교수는 이를 우선 '정(鄭)나라 소년'이라는 뜻으로 푼다. 여기서 정나라는 고대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후국 중 하나로 기원전 375년 한(韓)나라에 멸망했다. 종주국인 주(周) 왕실과는 같은 종족에 속한다.

황 교수는 한국학중앙연구원 계간 학술기관지로 최근 발간된 '정신문화연구' 겨울호(제30권 4호. 통권109호)에 투고한 '<동동> '새셔가만하얘라'와 <한림별곡> '뎡쇼년(鄭少年)'의 의미 재론'이라는 논문에서 '뎡쇼년'은 음란한 음악을 뜻하는 '정성'(鄭聲)이나 '정음'(鄭音)처럼 굳어진 말로서 정나라 젊은이들처럼 방탕한 유희를 일삼는 선비들을 의미한다고 풀었다.

황 교수에 의하면 정(鄭)나라는 같은 춘추전국시대 제후국인 위(衛)나라와 더불어 음란방탕한 문화를 대표하는 존재였다. 이에 의해 정나라 음악이라고 하면 곧 음란한 음악과 같은 말이었다.
심지어 논어 양화편에 수록된 공자의 말 중에는 "자줏빛이 빨간빛을 탈취함을 미워하며 정나라 음악이 아악(우아한 종묘 음악)을 어지럽힘을 미워하며 예리한 입놀림이 나라를 뒤엎음을 미워한다"는 대목이 보일 정도다.

황 교수는 나아가 한림별곡에 보이는 '뎡쇼년'이 전국시대 말기에 나온 법가(法家) 이데올로기의 성전인 한비자(韓非子) 중 내저설상(內儲說上)에도 그대로 나온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이에 의하면 '정소년'(鄭小年)은 "학문이나 수양 등 자신을 가꾸는 데 힘쓰지 않고 떼지어 다니며 해이하고 방탕하게 지내던 정나라의 젊은이들을 말한다"는 것이다.

한비자의 정나라 젊은이들에 대한 이런 세태 기술은 사마천의 사기 중 순리열전(循吏列傳)에서는 '희롱을 일삼는 방종한 더벅머리들'을 뜻하는 '수자'(竪子)라는 표현으로 대체되고 있다. 사마천은 이들의 이런 행동을 '희압'(戱狎)이라 묘사하기도 했다.

부어라 마셔라 죽림칠현도



황 교수는 '뎡쇼년'이 방탕한 젊은이를 지칭한다는 또 다른 방증자료로 한림별곡이 제작된 시기에서 멀지 않은 시대를 산 고려말 문인이자 정치가인 목은 이색(李穡)이 남긴 '추천'(그네)이라는 시를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중국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그곳 청춘남녀들이 그네 띄는 모습을 보고는 고국 고려의 단오절 풍경을 회상하며 읊은 이 시 마지막 구절에는 "붉은 실 그넷줄은 허공에 박차 오르고 / 당겨주고 밀어주는 저기 저 소년들 / 굳고 굳은 사내 마음 여인네 눈길에 흔들리네"라고 노래했다.

이로 볼 때 황 교수는 한림별곡 뎡쇼년은 "남녀간 유희를 거침없이 즐기며, 여자들이 탄 그네를 밀며 방탕하게 노는 선비들을 해이하고 방종하게 나라를 어지럽히던 정(鄭)나라의 소년들에 견준 말"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황 교수는 같은 고려가요 동동(動動) 중 9월령에 등장하는 난해한 어구인 '새셔가만하얘라'는 '새셔/가만하얘라'로 끊어 읽어야 하며, 이 경우 '새셔'는 '새로 거른 좋은 술'을 의미하며, 따라서 이 구절은 "새로 거른 술에 (국화) 향기 그득하구나" 정도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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