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서울, 그것도 같은 사대문 안인데 창경궁은 겨울이 참말로 엄혹해서 근자 포근한 날이 계속됐으니 춘당지 얼음 역시 녹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십상이지만 어제 그 몰골은 이랬다.
보다시피 동토의 왕국 시베리아 혹은 중간진이라 이런 데 물에서 노는 원앙이 있을 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보름전쯤 춘당지가 녹았냐 원앙 있냐 창경궁관리소로 문의하니 봄까지 기다려야 하며 그때는 병아리 데리고 연못을 활보하는 원앙 무리 볼 수 있으며 것도 때를 잘 맞추어야 하니 갈수록 병아리 숫자가 줄어든다 하거니와 고양이 같은 놈들이 냉큼 냉큼 병아리를 잡아먹기 때문이라 한다.
언제적인가 내가 이 춘당지서 원앙 무리 원없이 구경하며 원없이 카메라 담은 적 있으니 이곳 춘당지 가운데 섬은 고양이 같은 천적이 접근 불가능한 곳이라 원앙 서식지로는 천혜의 환경을 갖춘 곳이다.
개똥도 약으로 쓰려면 없다고 새작가 본격 데뷔를 공언하며 그 수습기에 들어간 마당에 하늘도 돕지 않을게 뭐람?
가는 날이 장날이라 휴관일이라 계우 이런저런 연줄 통해 들어가긴 했으나 까치 세 마리만 이 나무 저 나무 옮겨다니며 껙껙 소리 지르는데 어째 날 놀리는듯 해 더럽게 기분은 안좋더라.
그 흔한 까마귀 한 마리 없단 말인가?
애꿎은 백송이나 성의없이 몇방 폰카로 건성건성 찍어주고 중국서 가져온 석탑도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두어방 틱틱 박아주고는 하염없이 춘당지 변 거닐며 입구로 철수하려는데 저 잡나무 아래서 뭔가 움직임 포착하니 박새라
참새 사촌인 저 놈은 인간을 크게 경계하지는 않는 편이지만 첫째 흔한 텃새라 매료가 상대로 적고
덩치가 참새랑 흡사해 코딱지를 방불하니 이 카메라로 담기는 여간 지랄맞은 게 아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떡본 김에 제사하는 맘으로 눈알 굴리며 서너방 눌러보는데 하도 꼬딱지라 내가 원하는 모습을 포착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으니 다 실패하고 말아 박새까지도 하늘이 돕지 않는다.
모래알에서 무슨 열매를 찾았는지 잘 모르겠다.
낭패한 심정으로 출구로 나서기 직전 잡목 더미에 그 이름도 요상한 직박구리..발음 잘해야 한다..앉아 요새 코로나 시국에 사우나 못간지 오래인듯 이곳저곳 부리로 벅벅 긁어대기 시작하는지라
그래 저 놈이라도 찍어봐야겠다 해서 몇방 놓고는 그래도 날아가지 않아 휙 날려 버리고 말았다.
원앙은 어케 찍어도 초점만 맞으면 이쁘기 짝이 없다.
그땐 흔한 줄만 알아서 언제나 찍을 줄만 안 원앙이 얼음덩이에 다른 데로 날아가 버리고 없다.
문화재청은 시급히 저 춘당지를 온천으로 만들고 먹이도 잔뜩잔뜩 주어 사시사철 원앙이 머무는 장소로 만들어주기 바란다. 온천이 아니래도 좋으니 춘당지 밑으로 열선을 깔아 얼음을 인위로 녹여주었음 하노라.
나도 새작가 소리 좀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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