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줄곧 국립문화재연구원이 발굴주의에서 벗어나야 하며 그네들이 직접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연구기반을 조성하고 그것을 지원하며 또 문화재를 위한 전략을 짜는 기관으로 변모해야 함을 역설했다.
이는 김정기 시대와의 결별을 말한다.
이제 창립 반세기도 훌쩍 넘은 국책 기관이 언제까지 그 유산에 묶여 우리가 직접 발굴하고 우리가 직접 논문도 쓰고 하는 일을 본령인양 삼을 수는 없다.
김정기 시대는 땅을 파는 사람도 기관도 없거나 태부족이었던 시절이다.
그때는 국가가 나서야 했으니 그럴 만한 사정과 시급성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시대와는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
지금 하는 업무 중에 국책기관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은 빼고 민간영역을 갉아먹거나 침탈한 분야는 과감히 민간으로 넘겨야 한다.
연구원은 전략을 짜야 하며 그 전략을 짜기 위해 민간과 협력해야 한다.
김정기 시대, 그를 이은 장경호 김동현 시대, 그를 이은 조유전 시대, 다시 그를 이은 최병현 시대는 끝났다.
저들은 오로지 땅만 파는 일을 능사로 안 세대다.
이제 저들은 뒤칸으로 물러나야 한다. 저들이 남긴 유산은 그 자체로 자랑스런 훈장과 트로피로 삼아 찬장에 고이 모셔두고 새로운 일감을 찾아나서야 할 때다.
지금이 한가롭게 땅 파고 있을 때인가? 지금이 한가롭게 고건축 조사하고 있을 때인가? 그 시대는 일찌감치 종언해야 했다.
어디를 왜 파는지를 고민하고 그 전략을 수립하는 데여야지 내가 곡걩이 삽자루 들고 들판에 나갈 때인가? 그런 일은 그런 일을 할 사람과 기관이 없을 때, 곧 김정기 시대 이야기다.
그림을 그려야지 않겠는가?
끊임없이 왜? 왜? 왜? 를 묻는데서 출발해 그로 돌아오는 데서 발현하는 전략을 짜야지 않겠는가?
천마총 발굴 반세기에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은 우리가 이만큼 훌륭했네가 아니라 우리가 그 시대와는 어떻게 결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이 시대는 이제 우리 손으로 끝장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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