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헤이안 시대 (2): 중국식 왕조의 수준

by 초야잠필 2024. 12. 26.
반응형
A scene (AZUMA YA: East Wing) of Illustrated scroll of Tale of Genji (written by MURASAKI SHIKIBU (11th cent.). The multi-panel curtain at the center bottom of the image is a kichō. The decorated sliding door panels at the top of the image are fusuma. The scroll was made in about ca. 1130 ACE and is in the Tokugawa Museum in Nagoya, Japan.

 
일본의 헤이안시대는 대략 우리의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초기에 해당하는데 

이 시대는 견당사 파견이전까지 한반 도를 통해 대륙문화를 섭취하던 일본이

중국으로부터 직접 문화를 수용하여 비약적 도약을 한다는 데 있다. 

우리가 일본사에 대해 관심이 없으면 흔히 생각하는 오류 중 하나가 

일본은 근세 이전까지 항상 한국에 대해서는 문화적 수혜자의 입장에 있었다는 생각인데, 

이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일본의 헤이안시대는 문화적으로 볼 때 한반도의 수준을 방불하거나

일부 추월한 측면도 많이 보여준다. 

통일 이전의 정치사회 체제를 계속 고수한 신라에 비해 

헤이안시대 일본은 중국식 정치체제로 일변하고 

문화적 수준도 상당한 정도에 도달했다. 
 

Section of a handscroll depicting a scene from the "Bamboo River" chapter of the Tale of Genji, c. 1130

 
예를 들어 이 시기에는 일본사에서 이른바 육국사라는 것을 남긴 시대인데, 

육국사 중 일본서기를 제외한 것은 말이 역사책이지 실제로는 실록이다. 

중국에서 실록이 등장한 것이 남북조시대부터라 하지만 실제로 제대로 기록이 남기 시작한 것은 당대부터라는데

이 제도를 그대로 들여와 기거주起居注를 남기고 그것을 책으로 묶은 것이 결국 일본서기를 제외한 나머지 육국사이다. 

동시기에 신라 역시 비슷한 기거주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지만 책으로 묶지 못해 우리의 이 시대 기록은 매우 빈약하다. 

한국인이 일본사에 대한 지식 없이 처음 건너가 그쪽 문화를 접할 때

가장 충격받는 부분의 하나가 바로 헤이안 시대의 문화 수준일 것이라 본다. 

헤이안시대의 문화 수준은 상당하다.
 

"Genpei Kassen-zu Byo-bu" / Akama Shrine Collection

 
 
이 시기에 이미 문화적으로 한반도의 수준을 따라 잡거나 일부 추월한 부분도 있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된 한반도 국가의 일본  문화에 대한 멸시는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헤이안시대 (1): 이른바 율령국가를 다시 본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