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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한달간 병석에 누웠다가 간 “중흥의 군주” 고려 현종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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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천하면서도 연애질을 다한 현종 왕순

 
전통시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군주의 죽음을 기록하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보통 왕이 언제 불예不豫하다 하고는 보통은 그 이튿날 아니면 사흘째에 붕崩 혹은 훙薨이라 뜬다.

군주한테 쓰는 불예不豫를 보통 몸이 편치 않다는 정도로 옮기지만, 그 자체 중병에 대한 완곡어법이기는 하지만, 실상 이 말이 쓰이는 맥락을 보면 회복 불능한 중태라는 뜻이다.

고려 제8대 임금 왕순王詢은 그 점에서 특이하다. 중태에 빠진지 한달만에 숨을 거두기 때문이다. 뇌출혈이나 뇌일혈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고려사와 절요에 의하면 재위 22년째인 1031년 4월 28일 을사에 병져 누운 그는 대략 한 달 뒤인 다음달 5월 25일 신미에 중광전重光殿에서 훙서한다. 

왕이 병이 위독해지자 태자 왕흠王欽을 불러 뒷일을 부탁하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훙서했다 하지만 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그냥 사경을 헤매다 가는 사람이 무슨 경황이 있어 태자를 불러 어쩌고 하겠는가?

그냥 갔다. 그 가는 자리에 태자가 임종한 일을 저리 완곡히 표현한 것이다. 
 

김훈 최질 막부 쿠데타

 
아버지가 죽자 태자는 익실翼室에 머물면서 아침저녁으로 거애[哀臨]했다 하는데, 아버지 시신을 모신 그 건물 회랑채에다가 임시 숙소를 마련하고서는 상주 노릇을 했다는 뜻이다. 

그의 죽음에 대한 졸기는 후한 편이다. 무엇보다 그 시대를 살다간 최충崔沖은 이리 평가했다. 

전傳에 이르기를, ‘하늘이 장차 일으키려고 하는데,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라고 했거니와 천추태후千秋太后가 스스로 방종하고 음란하여 몰래 왕위 찬탈을 도모하였으나, 목종穆宗은 백성들의 바람을 알았기에 천추태후의 악한 당여黨與를 물리치고 멀리 사명使命을 전달함으로써 왕위[神器]를 물려주어 혈통[本支]을 굳건하게 하였으니, 이른바 하늘이 장차 일으키려고 하는데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라는 말을 어찌 믿지 않을 것인가.

하지만 이모姨母[천추태후-인용자]가 재앙을 남겼기에 무신이 반역을 꾸미고 강대한 이웃이 틈을 엿보아서 경성의 궁궐이 모두 불타버리고 어가[乘輿]은 파천하게 되었으니, 곤경[艱否]이 극에 달하였다. 반정(反正)한 이후에는 오랑캐와 화친하여 우호를 맺음으로써 전쟁을 멈추고 문文을 닦았으며, 부세를 감면하고 요역을 가볍게 하였고, 뛰어나면서 어진 자들을 등용하고 숭상하여 정사를 닦음에 있어 공평하였다. 안팎이 이에 평안하였고 농상農桑이 언제나 풍요로웠으니, 가히 중흥을 이룬 군주라고 할 만하다.

군주가 이런 말을 듣기는 쉽지 않은데 현종은 이랬다. 

훗날 다시 고려사를 편찬하면서 이제현李齊賢은 저 말을 이어 이렇게 현종을 평했다.

최충이 말하는 것은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천명天命이다. 구천句踐은 쓸개를 맛보며 회계산會稽山에서의 치욕을 씻었으나, 소백小白은 거莒에서의 일을 잊었기 때문에 제齊에 후환을 남겼다. 인군이 천명이 있음을 믿고 마음대로 하면서 법도를 무너뜨린다면, 비록 그것을 얻었더라도 반드시 잃게 된다. 이 때문에 군자는 잘 다스려질 때에도 어지러워질 것을 생각하고 편안할 때에도 위태로움을 생각하여, 끝을 처음과 같이 삼감으로써 하늘의 아름다운 도리[天休]에 응답한다. 현종과 같은 경우가 이른바 ‘나는 비판할 거리가 없다.’는 것이로구나.”

앞서 말했듯이 현종은 참말로 더럽게 재수 없는 시대에 느닷없이 엎혀서 왕이 되었고, 왕이 되어서도 갖은 간난을 다 겪었으니, 그래도 그런 간난을 딛고서 중흥의 발판을 마련했으니 그 공로가 어찌 가벼울 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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