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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왕조국가 체제에서 저런 식으로 선물 꾸러미 몇개 든 쫄개 몇 명 데리고 가는 사신 행렬단은 유사 이래 없다.
외교를 내 아버지가 내 담임 선생님 뵈러 갈 때 우와기 걸치고 쌀 가마니 하나 들고 가는 그런 모습으로 할 수는 없다.
심지어 전투 중인 양쪽 군대에서도 협상을 벌일 때도 저런 식으로 하지 않았다.
비상 사태에 대비해 적어도 수 백 명 이상 되는 중무장한 양쪽 군대가 뒤쪽에서 집결한 가운데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물론 이해는 한다.
드라마니깐.
고려거란전쟁에서 2차 전쟁이 끝나고 양측에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전쟁을 막아보고자 고려 조정에서 김은부를 거란에 파견하는 장면이다.
촬영 무대가 어딘지 모르겠는데, 저런 장소 찾는다고 애를 먹었겠다 싶다. 배경은 CG 처리해야 했으니 돈도 많이 들었을 것이다.
저런 식으로 김은부가 고려 사신으로 가면서 깃발 하나 들고는 쫄개 서너 명 데리고 갈 수는 없다.
사신단은 외교 행렬이라 장대하기 짝이 없어 수 백 명 이상으로 구성됐다.
아무리 드라마라도, 돈 많이 들어간다고(설마 외교 행렬이 그렇게 많다는 생각을 못하지는 않았겠지만) 저리 처리하는 것은 좀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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