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강동육주江東六州라는 말은 전통시대 사서에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 점이 못내 옛날부터 미심쩍기 짝이 없었지만, 그런 대로 저 시대 역사를 설명할 때는 편리한 점이 많아 그대로 따르기는 했지마는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우리한테 각인한 이미지는 서희라는 세 치 혀로 무장한 뛰어난 고려시대 외교관이 80만 대군이라 설레발 친 거란 소손녕과 외교 담판을 지어 그 자리서 저 땅을 받았다고 하지만 천만에.
당시 양쪽 조정을 대표한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밀실 야합이 있었는지는 고려사(절요 포함)와 요사 모두 침묵하지만,
이후 전재된 양상으로 보건대 명확해서, 또 많은 이 시대 연구자가 지적하듯이 고려는 송과의 조공책봉 관계를 끊고 이제부터는 거란을 종주국으로 섬겨 요나라에서 조공 책봉을 받겠다.
콜?
하니,
소손녕도 오잉? 이 정도는 받을 만한데? 했으니, 왜? 그래야 본인도 군사를 발동했는데 아무런 전과도 없이 돌아갔다간 삭탈관직이 뻔하니, 이 정도면 좋겠사옵니다 라고 거란 조정에 보고해서 화의가 성립한 것이니
문제는 이쪽에서 하나를 주었으면 저쪽에서도 하나를 주어야 한다는 평범성이다.
고려는 이제부터 거란이 천하의 주인이다. 우리도 그 대세에 동참하겠다는 큰 선물을 안기는 그 반대급부를 얻어야 했다.
이때 서희가 던진 반대급부가 실은 절묘했다.
소손녕이 물었다.
오키 콜, 그럼 고려가 원하는 건 뭐냐?
서희의 대답
야, 우리가 너들한테 가서 굽신거릴라 카는데, 길이 없자네? 우리가 니들한테 가는 길목에 여진 저 씝쉐들이 막고 있자나. 바다로 돌아가라고? 바다 위험해. 너 바다 안 나가봤어?
우리가 말야, 우리 북서쪽 국경에서 너들 동경까지 가려면 압록강 동쪽 저 땅 있자나, 여진이 눌러 앉은 저 땅 말야. 저걸 우리한테 열어주라.
여진이 너들 말 안듣제? 그럼 딱 하나만 눈감아 주라, 우리가 압록강 동쪽 여진 몰아낼 테니, 괜히 여진은 우리한테 복속하는데, 용서할 수 없데이 하면서 낄 생각하지 마레이. 기냥 눈감고 있어주마 된데이. 콜?
화의 밀약은 이렇게 해서 성립했다.
이 외교 담판이 성립된 이듬해 고려 성종 13년(994), 고려는 서희를 총사령관으로 앞세워 군사를 거느리고 압록강 동쪽을 들이쳐서 여진 소탕전을 벌인다.
든든한 후원군 거란을 잃은 여진은 맥없이 그 땅에서 쫓겨났다. 그 자리에다 서희는 장흥진長興鎭·귀화진歸化鎭·곽주郭州·귀주龜州 네 성을 쌓았다.
아이고 이거 재밌네? 나 장군이야?
계속 무기를 잡은 문관 출신 서희는 다시 그 이듬해에도 군사를 거느리고 나머지 여진 소탕 작전에 돌입해 그들을 몰아내고는 안의진安義鎭·흥화진興化鎭 두 성을 추가로 쌓았고,
다시 이듬해에는 선주宣州·맹주孟州도 공략해 성을 쌓았다.
따라서 서희 열전에 의하면 그가 개척하고 옛 여진 땅에 쌓은 성은 8군데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여진을 주시해야 한다. 이를 갈았을 테니 말이다.
어디다? 거란 고려 양쪽에 이를 갈았다.
이 이를 간 일이 훗날 금 왕조 건국으로 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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